며칠 전 한나라당 의원 5명이 점심 식사를 하러 여의도의 한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4명은 친박 성향이고 친이 성향의 A 의원도 있었다. 지나가던 당 관계자가 A 의원에게 "저쪽으로 넘어가셨습니까?"라고 농담조로 물었다. A 의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아니야, 그냥 식사만 하는 거야"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다.
이 삽화가 21일로 창당 11주년을 맞는 한나라당의 현주소다. 같은 당 의원인데도 친이계와 친박계가 함께 식사하거나 동행하면 오해를 받는다. 말이 '한나라'지 실제는 물과 기름처럼 나눠져 있는 '한 지붕 두 가족'인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19일 계보 의원들과 함께 경남 창녕의 우포늪을 찾았을 때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조해진 의원도 함께 했다. 조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인 창녕을 찾은 것이 너무도 당연한데도 당내에서는 "조 의원이 왜 함께 갔지"라는 뒷말들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 친박 핵심인 김무성 의원이 식사를 함께 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에도 그랬다. 일부 친박계 인사는 "김 의원이 왜 이 의원을 만난 거야"라는 반응을 보였다. 말로는 '평생 동지'지만 내심으로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당 안팎에서는 계보와 관련된 갖가지 신조어가 나돌고 있다. '월박'(친이계에서 친박계로 넘어감) '주이야박'(낮에는 친이계, 밤엔 친박계) '탈박'(친박계에서 이탈) '복박'(친박계로 복귀) '원박'(원래 친박계)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뒷말이 나오다 보니 같은 계보 의원들끼리만 모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친박계 의원들은 함께 술을 마실 때 "끝까지~" "뛰자!"라는 건배사를 한다. 차기 대선까지 박 전 대표 중심으로 뭉치자는 뜻이다.
계파 갈등의 원인에 대한 진단도 서로 다르다. 친박계는 "승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친박계 인사들이 당직과 공직에서 거의 배제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친이계는 "박 전 대표가 야당보다 정부를 더 비판한다"고 반박한다.
한 중진은 "과거 한 지붕 세 가족이었던 민자당 때도 민정, 민주, 공화계 의원들이 계파를 떠나서 어울리는 경우가 꽤 있었다"면서 당내의 삭막한 분위기를 우려했다.
계파 갈등이 가장 심각한 문제지만 한나라당 11주년의 자화상을 일그러뜨리는 것은 또 있다. 지도부의 약한 리더십, 주요 정책을 둘러싼 당 지도부의 잦은 이견 노출 등이다. 이런 문제들이 겹치면서 한나라당은 과반수를 훨씬 넘는 172석을 갖고 있으면서도 법안 등을 제 때에 처리하지 못해 무기력한 여당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당 지지율은 35%을 웃돌아 민주당보다 두 배 이상 높지만 그것은 대안 정당의 부실에 따른 반사이익일 따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하용 경희대 교수는 "이런 난국에 여당이 분열되고 제 역할을 못하면 국정도 곪게 된다"면서 "무엇보다 우선해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화합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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