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성 진통제'하면 떠올리는 단어가 중독이다. 효과는 뛰어나지만 중독 위험으로 인해 흔히 쓸 수 없는 약, 꼭 필요하면 최소한 사용해야 하는 약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과연 그럴까.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통증을 동반하는 퇴행성 질환이 많아지고, 이에 따른 만성 통증의 유병률이 높아지면서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만성 통증은 지속적인 통증으로 인해 중추신경에 변화가 일어난 상태라 중추에 작용하는 마약성 진통제가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고자 할 때 막연히 생기는 불안은 바로 중독 문제다.
중독 문제 전문가인 서울대병원 정신과 강웅구 교수를 통해 통증 치료의 실태와 마약성 진통제의 중독 위험에 대해 알아본다.
■ 중독은 약물 특성보다 투약 방법 문제
마약성 진통제를 조금만 신경을 써서 사용하면 중독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성분 특성에 따라 중독 가능성의 차이가 있지만 성분 특성보다 투약 습관이 중독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약을 복용했을 때와 약효가 떨어졌을 때 증상 차이가 확연하고, 약을 갑자기 중단했을 때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금단증상을 경험하면 환자는 약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환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박적으로 약을 찾고 약이 없으면 불안해 하고 약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약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중독 상태가 된다.
중독은 무의식적 반복학습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24시간 충분한 진통효과를 나타내도록 주사제 등의 속효성 약제보다 서방형 약제를 사용하고, 용량을 천천히 올려주면 중독을 일으키지 않고 사용할 수 있게 된다.
90년대에 다양한 서방형 약제가 개발되면서 10년 새 마약성 진통제의 세계소비량은 두 배 가량 증가했다. 처음에는 암이나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 같은 질환에만 사용됐지만 점차 확대돼 만성 통증에도 널리 사용됐다. 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중독 문제는 암이나 AIDS보다 만성통증에서 더욱 자유롭다.
마약성 진통제의 경우 약물로 인한 쾌락을 경험하면 더욱 무의식적 학습이 쉽게 일어나는데 만성통증 환자의 경우 뇌의 마약수용체가 현저히 줄고, 쾌락을 느끼게 되는 신경반응체계 일부가 차단돼 있어 마약성 진통제의 위험 자체가 매우 적다.
■ 서방형 약물, 약물 중독 막고 환자 편이까지
1990년대 이후 서방형 마약성 진통제가 개발되면서 마약성 진통제의 중독 위험성은 더욱 줄었다. 24시간 꾸준히 약효가 지속되고 약을 투여한 뒤 약효가 천천히 나타나므로 무의식적으로 의존성이 형성되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약물이 천천히 흡수되므로 환각을 느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유럽의 만성통증 치료 지침에는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할 때 '반드시 서방형 제제를 사용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진통제 사용 기준이'통증 있을 때 투여'에서 '24시간 지속 치료'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약효가 장시간 지속되는 서방형 약제가 보편적인 마약성 진통제다.
최근 연구결과,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경력이 없는 사람은 마약성 진통제 사용으로 인한 중독 위험은 0.2%정도였다. 이는 서방형 약제와 속효성 약제의 사용 구분을 하지 않은 결과로 이중 서방형 진통제를 사용했을 때만 따로 분석하면 중독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3일간 지속되는 패치형 마약성 진통제인 '듀로제식 디트랜스'(한국얀센)가 발매돼 만성통증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패치형 마약성 진통제의 경우 약효가 3일간 지속되므로 중독 위험도 낮고, 먹는 불편도 없다. 그리고 마약성 진통제의 고질적 부작용인 변비도 먹는 약보다 현저히 낮아졌다.
또한 통증치료 효과가 24시간 지속되지 않으면 통증으로 인해 파생되는 우울증, 불면 등의 증상이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고 한다. 치료 목적이 아닌 오ㆍ남용은 반드시 막아야 할 사회악이다. 그러나 마약성 진통제의 경우 막연한 편견으로 인해 정말 약을 필요한 사람이 치료 받지 못하는 것이 더욱 문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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