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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뜨락] ⑥ 소설가 성석제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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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뜨락] ⑥ 소설가 성석제 상주

입력
2008.11.21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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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본적지는 경상북도 상주시(尙州市) 낙양동(洛陽洞)이다. 중국에서 고대의 주나라를 비롯해 9개 나라의 수도였던 뤄양(洛陽)과 한자가 같다. 옛날에 낙양이 뤄양처럼 번성했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영남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낙동강은 '상락(上洛)의 동쪽에 있는 강'이라는 뜻이며 여기서 상락은 상주의 옛 지명이다.

어린 시절 내가 뛰놀던 산과 들과 길 어디에서든 열매를 볼 수 있었다. 뽕나무는 상주 특산 명주를 낳는 누에를 키웠지만 아이들에게는 오디가 더 중요했다. 오디를 먹다 붉게 물든 아이들의 손과 입은 호두, 밤, 감을 먹을 때도 갈색 물이 들었고 살구, 복숭아, 사과, 배, 포도, 대추에 고욤이나 돌배, 개복숭아, 산딸기까지 들과 산, 집안에 열매 천지였다.

특히 감은 감꽃을 비롯해 풋감, 삭힌 감, 홍시, 곶감, 감껍질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먹을 수 있었다. 외남면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 먹은 감나무는 300여년 전과 마찬가지로 매해 수천 개의 감을 맺는데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먹었을 감을 그 아득한 후예들이 여전히 먹고 있다.

삼한 최초의 인공 저수지인 공검지(공갈못)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상주는 들판이 넓고 일찍부터 농사가 발달했다. 낙동강을 비롯한 수많은 하천과 저수지에서 공급되는 물로 지은 쌀은 전국 7위의 생산량이고, 가리마 같은 사잇길이 있는 보리밭, 늑대가 나온다는 밀밭, 마음이 가 있기 좋은 콩밭에 영화를 찍어도 될 수수밭에 고구마밭, 감자밭이 곳곳에 있었다.

여기에 옥수수, 녹두, 깨, 조, 메밀, 호밀, 귀리 등등 곡식의 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는 곡식이 없었다. 쉽게 말해 상주는 '열매(實)의 속내용'을 뜻하는 실속의 본산이었다.

인구당 자전거 보유 대수가 전국 1위인 상주는 자전거의 메카로 꼽히기도 한다. 빠르고 효율적이면서 연료가 들지 않고 평평한 땅이 많은 환경에 알맞기 때문이다. 이 역시 실속 있는 상주 사람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상주에서 전국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농특산물은 의외로 많다. 곶감은 물론이고 육계, 오이, 꿀이 전국 1위의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으며 한우는 2위, 포도, 배의 과실도 수위권의 산출량을 기록하고 있다.

상주 사람들은 자랑을 좋아하지 않아 가만히 있었는데 농수산식품부에서 조사한 결과 2007년 기준 연간소득 1억원이 넘는 농업인의 숫자가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내 조상들처럼 실속이 몸에 밴 농부의 유전자 형질을 따르자면 문학도 실속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가령 옛 이야기 '추풍감별곡'도 길쌈하는 어머니 곁에서 딸이 이야기 대신 읽어주는 '쓸모'가 있어서 집에 붙어 있을 수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서점 하나 분의 무협지가 내 독서목록에 추가된 이유 역시 큰 맥락의 실속 - 어떤 책이든 읽어야 하는 연령, 이야깃거리를 찾는 본성 - 에 따른 요구 때문이었다. 내가 쓰는 소설 역시 이 시대 사람들의 삶과 풍속, 희망을 담는 그릇으로 감동과 감응이 없으면 존재 의미가 없다.

풍요로운 상주의 산천에 무실역행의 정신문화가 자리 잡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산이 밑받침된 철학과 문화는 공리공담일 수 없고 실생활, 삶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큰 굴곡이 있을 때 상주 사람들 사이에 격렬한 분쟁이나 갈등이 적었던 것은 저마다의 충실한 삶을 서로 존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평화를 깨뜨리는 외부의 적을 향해서는 다함께 뭉쳐서 결사적으로 항거했으니, 임진왜란 때 어느 지역보다 먼저 의병을 일으켰고 왜적에게 빼앗겼던 성을 의병과 백성이 앞장서 탈환했던 것이 좋은 예이다.

넓은 판도에 수없이 많은 골짜기와 마을, 길과 고개마다 꾸밈없는 사람들의 인간사, 이야기가 들어차 있어 이야기꾼은 그저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열다섯 살 때 상주를 떠났는데 그때는 이미 상주가 내 몸과 마음, 운명을 결정지은 다음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썼던 소설의 절반 이상이 상주와 관련된 것들이고 우리 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상주의 귀한 사투리와 말투를 푹푹 가져다 쓰기도 했다. 상주라는 샘은 마르는 법이 없었다.

오래된 고을 상주에는 깊은 산이 있고 깊은 골짜기가 있으며 깊은 강이 있다. 발효된 장의 깊은 맛이 있고 밤에는 원유처럼 검은 어둠이 깊다. 고찰의 적막이 깊고 고택과 서원의 그늘이 깊다. 들로 뻗어 있는 길, 골목길과 산길이 깊다. 먼 곳을 바라보아온 아이의 눈이 깊다.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이 없어 공기와 물은 맑은 본연의 기운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기후는 온화하고 태풍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는 별로 없었다. 이런 곳에서 태어난 내가 어릴 때 가장 많이 듣던 말 두 가지는 '풍신을 바르게'와 '염치'였다.

그 두 가지「?주의하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도움을 빌지 않고, 존중받으면서 자족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누군가 내 고향에 온다면 나는 맛있고 다양한 열매, 풍요로운 곡물의 맛을 보고 들길, 둑길, 산길을 걷고 강둑을 바라보며 달려보라고 할 것이다.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으며 대기와 스스로의 가슴이 하나가 될 때의 그 벅찬 느낌은 상주의 어떤 특산물보다 값지고 간직할 만한 것이라고 말해 줄 수 있다.

그리고 그건 공짜이고 썩지 않으며 보관하는 데 힘들지도 않다고, 갱신하고 싶으면 언제든 돌아와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런데 나는 언제나 낙양의 지가(紙價)를 올려볼 수 있는 것일까? 전생, 내생을 합치면 가능할까?

■ 문학을 통해 고향을 다시 얻다

11월 15일, 성석제 작가를 마지막으로 경북문학투어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한 지역을 집중적으로, 그것도 문학을 테마로 투어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8월 9일 정호승 시인을 시작으로 성석제 작가까지 문학인 6명과 독자 500여명, 문학공간 6곳을 깊이 조명했다.

정호승 시인의 청도 운문사와 김주영 작가의 <객주> 첫무대인 문경새재, 김명인 시인의 울진 불영사, 안도현의 예천, 문태준의 김천, 성석제의 상주 등의 문학적 공간은 발전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잘 보존되어 있었다. 특히 문태준 시인의 시적 공간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의 문학적 공간은 개발에 밀려서 흔적을 찾지 못하거나 표징 하나 없어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 경북 지역의 문학 공간은 개발이 되지 않아서 좋았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개발이 되지 않아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이번 문학투어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안도현 시인은 "수많은 어린 나가 새겨놓은 기억을 만났다", 문태준 시인은 "내 문학의 첫사랑인 고향을 다시 만났다"고 말했다.

참가한 독자들도 "책을 통해서 본 문학인을 하루 종일 직접 만나 대화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작가와 작품 공간, 시대적 배경이 흡사해 깜짝 놀랐고,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던 경상북도를 구체적으로 구석구석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문학작품 이해에 있어서 그 배경이 된 지리적 공간의 면모와 그곳에 묻힌 작가의 내밀한 경험을 살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기획은 문학도 테마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애초 다른 지역과 달리 풍광도 빼어나지 않고 그렇다고 관광 인프라가 특별히 구축되어 있지 않은 경상도 지역을 문학으로만 기행한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참여 문학인과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문학을 통해서, 문학 정신을 통해서 고향을 찾고, 나를 찾는 특이한 체험을 할 수가 있었다.

이번 투어는 문학사랑(이사장 김주영)의 기획으로 활자매체에 익숙한 문학을 음악이나 미술, 혹은 여행과 접목해 독자에게 다가가 문학을 널리 알리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문학인에게는 고향에 대해 애향심을 가져야 하고, 가능하면 그 고향을 위해 문학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경험이 됐으리라 생각한다. 독자들 역시 문학을 통해 자신의 고향을 다시 찾고 정체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리라 믿는다.

이종주 시인ㆍ문학사랑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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