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의 A(36) 변호사는 요즘 사무실 운영이 버겁다. 개업 5년차인 그가 최근 두 달간 맡은 사건은 고작 1건. 건당 수임료가 500만원 수준이라 해도 매월 400만원 이상인 사무실 운영비를 감안하면 최소 월 2건은 돼야 유지가 되는데 현실은 딴판이다. 적자를 보는 달이 더 많을 정도다. 사무장을 고용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A변호사는 "예년 같으면 추석 이후 사건이 늘어나는데, 올해는 경제불황의 여파 탓인지 그렇지도 않다"며 "차라리 브로커 사무장을 고용할까 하는 유혹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 사건도, 수임료도 '뚝'
경제위기 국면을 맞아 변호사 업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사건 수에 비해 변호사는 계속 늘어나는데, 그나마 사건이 대형 법률회사(로펌)나 판ㆍ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들에게 쏠리면서 개인 변호사들은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관 출신이 아닌 개인 변호사들은 수임료가 높은 형사사건은 구경조차 힘든 상황이다.
A변호사는 "주변을 둘러봐도 2, 3개월에 1건 꼴로 사건을 수임하는 이들이 상당수"라며 "개인 변호사들은 사건을 찾으러 발벗고 나서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수임료도 뚝 떨어졌다. 2004년 서초동에 사무실을 연 B(35) 변호사는 개업 당시 민사사건의 경우 건당 최저 55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220~330만원대로 떨어졌다.
그는 "서초동은 여전히 500만원이라고들 말하지만, 실제로는 300만원 안팎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심지어 100만원짜리 사건도 맡아 봤다"고 말했다.
■ 세일즈 나서는 변호사들
수임난(難)에 처한 변호사들이 사건 확보를 위해 갖가지 자구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경미한 수준의 저작권 위반 사례를 찾아내 합의금을 요구하는 변호사들이 대표적이다. 저작권자의 위임을 받아 인터넷 블로그 등에 MP3 음원파일이나 영화파일 등을 게시한 네티즌을 형사 고소한 뒤 전화를 걸어 "고소를 취하하려면 합의금이 필요하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방식이다.
나이가 어린 10~20대의 경우 '형사처벌' 소리에 깜짝 놀라 60~100만원 수준의 합의금을 건네게 된다고 한다. 수익은 변호사와 저작권자가 6대 4의 비율로 나누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영업방식을 취하고 있는 S법무법인과 K변호사 등은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저작권 보호의식이 미미한 한국 현실에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또 다른 S법무법인 관계자는 "업계가 불황이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수익만을 위한 무작위 단속이 일반 국민들의 저작권 인식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름을 알리기 위한 일부 변호사들의 인터넷 배너광고나 케이블 TV광고 급증, 펀드투자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법무법인ㆍ변호사의 공개설명회 개최 등도 치열해진 수임경쟁의 단면을 보여준다.
■ 브로커 활개 위험도
사건 소개를 대가로 수임료의 일부를 챙기는 '법조브로커'가 다시 활개를 치게 될 위험도 있다. C(35) 변호사는 지난 여름 이상한 전화를 받은 일을 소개했다. 그는 "'OOO 검사와 아는 사이 아니냐. 관련 사건을 소개해 주겠다'는 전화가 걸려와 '당신 누구냐'고 했더니 그냥 끊었다"며 "아마도 사건 브로커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사무장 고용 심사 엄격화 등을 통한 자정 노력 결과 브로커를 통한 사건수임 관행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근절'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8월 법조윤리협의회는 6개월간 브로커를 통해 50건 이상의 사건을 수임한 이모 변호사에 대해 "대가성 여부와 사건 유치 경위 등을 파악해 달라"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이제는 브로커가 거꾸로 변호사들을 고용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변호사들의 생계가 어려워지게 될 경우 무리한 사건 수임이나 소송 남발, 심지어는 범죄에의 악용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변호사 개개인이 자신만의 특화 영역을 개발하려는 노력과 함께 사익과 공익을 균형있게 조화시키는 책임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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