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티븐 로치를 꿈꾼다… 1세대 애널리스트 3인박천식 현대증권 부장 "점쟁이 아닌 기업 펀더멘털 살피는 분석가 "신윤식 메리츠증권 부장 "체력·집중력은 떨어지는데 찾는 곳은 늘어"양종인 한국투자증권 부장 "연봉·인기등눈앞의 현실만 봐서는곧후회
5년 전 세계 금융계는 두 애널리스트의 맞대결을 주목했다. 모건스탠리의 간판 주자 스티븐 로치(당시 57)와 앤디 시에(42)가 그 주인공이었다. 두 사람은 선진 7개국(G7) 정상 회담의 합의 내용과 세계 경제의 불균형 해법을 두고 맞섰다. 특히 '늙다리' 애널리스트 로치는 날카로운 논리로 젊은 시에를 몰아붙였다. 로치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분석가 중 한명으로 꼽힌다. 30년 가까운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이들과 논리 대결을 즐기는 것도 여전하다. 미국 유럽의 금융 선진국에서는 로치처럼 노익장을 과시하는 애널리스트의 활약이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이 지긋한 애널리스트를 찾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와 같다. 현재 50세 이상 애널리스트는 겨우 9명(0.6%). 10명 중 8명 이상이 평균 경력 3년 미만의 20~30대인 상황에서 50세까지 버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한국의 스티븐 로치를 꿈꾸는 애널리스트 3명을 만났다. 국내 증권계의 1세대 애널리스트인 박천식(49ㆍ1989년 입사) 현대증권 부장, 신윤식(48ㆍ88년 입사) 메리츠증권 부장, 양종인(47ㆍ89년 입사) 한국투자증권 부장은 "체력이 될 때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늙다리 애널리스트의 최대 장점은 산전수전 다 겪어본 경험이다. 대다수가 외환위기는 물론이고 2003년 카드 사태도 겪어보지 않아 요즘 같은 위기에서 이들은 보석 같은 존재다. 최근 이들로부터 위기 탈출 비법을 얻고자 하는 기관의 정보운영책임자(CIO) 등 핵심 인사들이 부쩍 많아졌다. 양 부장은 "외국의 기관 투자가들은 먼저 해당 분야를 얼마나 다뤘는지 물을 정도로 경험을 중시한다"며 "경험 많은 애널리스트가 최고경영자(CEO)보다 그 회사를 더 잘 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시간만 보낸다고 경험이 그냥 쌓이지는 않는 법이다. 더구나 보고 배울 사람 하나 없는 1세대여서 이들은 '맨 땅에 헤딩'하는 수밖에 없었다. 신 부장은 "제대로 된 자료도 없이 몇 년 앞을 내다보는 재무제표를 만들고 원가를 추정했다"며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20년 넘도록 주말이나 휴일을 잊고 고생하며 창조를 이룬 셈이다.
창조만으로도 벅찬 애널리스트. 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슈퍼맨'이 되길 바라고 있다. 예전에는 분석 보고서 쓰는 게 전부였지만 요즘 보고서는 기본이고, 밖으로 나가 직접 영업을 하는데 에너지 대부분을 쓴다. 외국의 기관 투자가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 타는 횟수도 많아졌다. 박 부장은 "얼마나 많은 투자를 이끌어 내느냐가 중요한 업무 평가 잣대"라고 했다.
여기에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부하 직원 관리, 인사 평가 등 관리자 역할까지 해내야 한다. 애널리스트는 계약직이 대부분이다. 최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구조조정 소식은 '잠재적 퇴출 1순위'로 꼽히는 이들에게 더 큰 불안감을 안겨준다. 신 부장은 "체력과 집중력은 떨어지는데 찾아 갈 곳은 많아지고 있다"며 "2중3중의 업무에 대다수가 불혹도 되기 전 지쳐서 떠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주식 시장이 폭락하고 좀처럼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자 투자자들 사이에서 애널리스트를 믿지 못하겠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이번 기회에 애널리스트 모두 깊은 반성과 함께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 부장은 그러면서도 "애널리스트는 점쟁이가 아니라 기업의 구조와 역량 등 펀더멘털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 맞고 틀리는 것으로 실력을 따져서는 안되지만 우리 투자 문화는 멀리 보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애널리스트들이 눈 앞의 상황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양 부장은 후배 애널리스트를 향해 "연봉, 인기 등 현실만 봐서는 머지 않아 후회한다"며 "묵묵히 한 우물을 파며 자신의 논리와 시각을 만들어 가야 장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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