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극장가는 썰물이다. 지난 10월부터 극장을 찾은 관객은 하루 평균 29만명. 올해 그나마 호황을 누렸던 7월 하루 평균 관객(59만명)의 반토막에 불과하다.
올해만의 현상은 아니다. 늦가을은 전통적인 극장 비수기. 덩치 큰 영화들이 나서길 꺼리는 시기다. 하지만 어둠이 있으면 빛도 있기 마련. 이 시기는 제작비와 마케팅비 등 물량에서 밀리는 예술영화들에겐 '실력'으로 겨룰 수 있는 절호의 시장이 열리는 때이기도 하다.
올해도 적지 않은 예술영화들이 11월말과 12월초 '마이너 리그'를 벌인다.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등 영화인 4명이 늦가을 당신의 눈을 잡을 예술영화 4편을 추천한다.
■ 사회파 감독의 코미디 - 해피 고 럭키
영국 영화 '해피 고 럭키'는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는 흐뭇한 코미디. 항상 유쾌하고 발랄한 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주변 사람들과 빚어내는 소소한 갈등과 삶의 풍경을 그렸다. '비밀과 거짓말'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마이크 리 감독 연출. 주인공 역할을 한 샐리 호킨스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전양준 부위원장은 "마이크 리는 주로 인종문제 등 무거운 주제를 다뤄왔던 데 비해 '해피 고 럭키'는 아주 대중적인 작품"이라며 "10대 초반까지를 제외하면 전 연령층이 두루 좋아할 만한 영화"라고 추천했다. 20일 개봉, 15세 관람가.
■ 노년의 열정 가득 - 로큰롤 인생
"음악에 대한 판타지를 충실하게 전달해 주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라는 형식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관객도 극적 감동을 느낄 만한 영화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음악 다큐멘터리 '로큰롤 인생'을 추천했다.
'로큰롤 인생'은 평균 연령 81세의 로큰롤 밴드 '영앳하트'의 활약상을 담은 미국 영화. 동료의 입원과 부고 소식을 무시로 들으면서 무대에 오르는 아마추어 노장들의 열정이 스크린을 데운다.
정씨는 "뮤직비디오 형식을 차용해 다큐멘터리의 딱딱함을 덜어냈다"며 "음악 애호가라면 누구나 좋아할, 가족 단위로 관람해도 좋은 영화"라고 호평했다. 27일 개봉.
■ 북구 예술영화의 저력 - 미후네
'미후네'는 1999년에 만들어진 덴마크 영화다. 1995년 라스 폰 트리에 감독 등이 주축이 되어 선언한 '도그마 95' 서약에 의거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인공조명과 인위적인 음악의 사용이 철저히 배제되며, 촬영도 카메라 들고 찍기로만 이뤄졌다.
정신지체 장애인인 형 때문에 삶의 나락에 떨어진 한 남자가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 대안가족을 형성한다는 내용이 거친 질감의 화면 속에서 전개된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익숙한 영화적 관습으로부터 비켜 서 있기에 관객들이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감을 잡기 어려운 영화"라며 "결말까지의 과정이 비록 매끈하진 않더라도 매우 자연스런 설득력이 있으며, 시종 밝고 풋풋한 느낌을 잃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수상. 20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 애니 다큐를 아시나요 - 바시르와 왈츠를
영화평론가 이상용(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씨는 1982년 레바논에서 자행된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을 소재로 삼은 이스라엘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을 꼽았다. 실사영화 촬영 불가라는 현실적 제약을 뛰어넘기 위해 아리 폴만 감독이 우회적으로 선택한 애니메이션 기법이 공명을 일으킨다.
이상용씨는 "중동의 내밀한 갈등과 문제점을 실사로 찍었으면 이런 감동적인 영화가 나왔을까 의문"이라며 "아주 정치적인 내용을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접근, 독특하면서도 편안하게 전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할리우드나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느낌을 원하거나 현실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에게 제격인 영화"라고 덧붙였다. 20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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