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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2> 서양화가 박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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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2> 서양화가 박서보

입력
2008.11.21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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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를 넘겼다는 것이 때로는 새로운 정점에로의 도전이 될 수 있다. 싱가포르 현대미술전(8일부터 내년 3월15일까지)에 초청돼 현지에 다녀온 화가 박서보(77ㆍ홍익대 미대 명예교수)씨는 이웃집에 바람 한 번 쐬고 온 사람 같았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아직 자신의 그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 '이래도 못 알아들어?' 하며 한 대 쥐어박고" 온 것이다. 귀국해서 하루 푹 자고는, 다시 똑같은 작업의 반복이다. 50년째 하루 12시간 작업을 고수하는 이 한국 서양화단의 거목의 일상은 마모되지 않았다.

- '초월 : 현대성'이란 부제를 단 싱가포르전은 어땠나?

"영화, 음식, 국악에 이어 이제 우리 현대미술까지 갔으니 거기는 완전 한국 붐이다. 내 작품은 대작(200호, 400호) 5점으로 한국 작가 중 메인홀에 가장 많이 전시됐다. 함께 공부한 이우환의 작품(150호)과 나란히 전시돼 감회가 새로웠다. 인도판 뉴스위크, 인터내셔녈 헤럴드 트리뷴 등 주요 매체와 인터뷰도 했다."

- 당신의 작품에 대해 서양에서는 "선불교적 명상을 주조로 한 '숭고미' 혹은 '경이로운 계시' 등으로 상찬한다. 해외가 주목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21세기는 스트레스 때문에 지구가 정신병동으로 돼가는 시대다. 묻지마 살인을 보라. 정보 전환의 속도를 인간이 못 따라잡기 때문이다. 가속화되는 시대 변천에 밀려 30대 과장이 머잖아 회사를 떠나는 슬픔을 직시해야 하는, 디지털 시대다. 막연하고 불안한 미래와 직면해야 하는 시대에서 예술의 기능을 반성해야 할 때다.

예술이란 작게는 개인 경험의 전달이지만 크게는 시대의 산물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예술은 이제 무의미하다. 21세기의 예술은 스트레스라는 새로운 문제점을 흡인해야 한다. 싱가포르에서 기자들에게 '미술은 스트레스에 찌든 대중을 치유해야 한다'며 21세기의 예술은 '일방적 폭력'을 행사하던 과거의 예술과는 작별해야 한다고 했던 것은 그래서다."

- 최근 들어 눈부신 파스텔 색조를 적극 구사하고 있다. 색채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인가?

"전에는 이념적으로 색을 통제했다. 오죽하면 단풍 구경도 마다했겠느냐. 그러나 일본 전시회를 앞둔 2000년, 주최측에 이번 것은 꼭 가을에 열라고 했다. 단풍 구경이 무척 가고 싶었다. 그 전에는 자동차 운전하며 눈에 들어오는 가로수 색깔에서 겨우 계절을 느꼈다.

그러나 자연과의 교감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에 항상 부채의식이 있었다. 그러다 후쿠시마현 우라반다이에 아내와 가서, 불타는 계곡에 충격 받았다. 단풍은 말 그대로 환상이었다. 내가 너무 건방졌음을 절감하고는 자연의 색을 화면 속으로 끌어들여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인간을 치유하는 예술이 새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 시대를 읽은 것인가.

"나는 70여년을 아날로그에서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불행스럽게도, 디지털 시대를 산다는 전 세대의 고민을 안고 산다. 그 변환은 충격이다. 21세기는 그래서 1회용 천재의 시대다. 모든 비엔날레가 어딜 가도 그 놈이 그 놈이다. 서로 추천하고 작품을 교환한다. 진정한 예술의 시대는 끝났다.

아날로그 시대의 미술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캔버스에 쏟아내는 것이다. 감상자들은 표현으로부터의 폭력을 기꺼이 감수했다. 그러나 이제 디지털 시대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있었지만 디지털 시대는 30대가 정년이다. 정보 변환 속도가 무지 빨라진다. 자판기 커피컵이 1회 쓰이고는 뭉개지듯, 모든 사람이 1회 쓰이고 짓밟힌다. 서구도 그 같은 시대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 최근 당신의 작품에 대한 해외의 평가는?

"지난해 12월의 전시회가 인연이 돼 지난 5월 꼬박 뉴욕의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가졌던 전시회의 경험이 일례가 될 것 같다. 당시 영국의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를 가졌는데, BBC에서도 이를 받아 방송하는 바람에 300만여명이 청취한 것으로 나왔다.

내 작품세계와 광우병 사태로 당시 극렬했던 한국 내 반미 감정이 주제였다. 때가 때이니만큼, 한국에서 미국 사람들이 사는 것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왔다.

나는 '미국에서 한국 사람 사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듯, 하등 이상하지 않은 현상이다. 한국은 다민족 국가로 전환 중이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려주었다. 방송 후 곧 반응이 왔다. 내 그림 등 이미지가 곁들여진 사이트가 타 방송사에서도 만들어진 것이다. '수십년 기다려 온 예술'이라며."

- 그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안정감과 행복감을 찾게 된다고 한다. '20세기 최고의 조각가 브랑쿠시, 미국의 일본계 2세 조각가 노부치 이사모 이후의 존재가 출현했다'며 전혀 모르고 있던 작가가 발견됐다고도 하더라.

내가 새로 화집을 내는 것은 그 여파다. 인쇄 중 그림을 20컷 교체하는 바람에 12월 중순께로 발행이 미루졌는데, 아마존에서는 '박서보, 마음을 비우다'라며 이미 책 광고까지 나오고 있다."

- 전후 피폐한 한국에서 정신의 존재에 주목한 당신의 회화는 이제 서양에 정신의 위안을 주고 있다. 어떻게 형성돼 왔나?

"동양은 근대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전통적 가치관을 파괴했다. 가치관의 공백과 상실에 따라 정치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중심이 상실됐다. 그 정신의 복원을 위해 나는 단색주의를 주창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모든 것이 박탈된 현실에서 내가 수신(修身)하는 도구로서의 회화 작업이었다. 수신 행위의 찌꺼기가 그림인 것이다. 나는 남하고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만일 내 그림과 같은 게 있다면 그냥 가져가라며 공언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 한지를 주 재료로 쓰게 된 것은?

"1982년부터 탐색해 오다 5년 뒤 공개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원근법이 생긴 것처럼 모든 문화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항에 대한 해석이다. 한국은 인간과 자연의 분리가 불가능하다.

내게 있어 한지는 단순한 표현 재료가 아니다. 내 작업은 한지가 자기 신체를 드러내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한지는 결국 물감과 합일을 이루게 된다. 선과 선 사이, 즉 고랑은 가장 중요한 매개점이다."

- 최근 국내 미술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심정은?

"미술품에 대한 소득세 납부는 말도 안 된다. 문화를 경제 논리로 밀어붙이려는 어불성설이다. 최근 중국 작품이 뜬 것도 실은 중국의 부호와 화상이 다 사 가다시피 하므로 서양 콜렉터들의 경쟁 대상이 되다 보니 빚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문화력 약한 싱가포르가 문화의 가능성에 눈뜬 사례를 보라.

단, 실제 유통되는 작품이 왜 국외 작가의 것들에만 치중하는가는 분명 문제로 지적돼야 한다. 한국의 부자 10분의 1만이라도 한국 미술품에 투자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현행 조세 제도가 가장 걸림돌이다.

미술시장이 동결된 것도 그래서다. 기본적으로 세계 경기 회복을 기다려야 할 문제지만, 정부는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 방침 포기를 검토할 시점이다."

- 본인의 대응은?

"내가 예를 들어 4억~5억짜리 작품을 팔면 1억은 세금이다. 타국에 비해 과중한 세율이다. 사실 물가가 올라도 그림값은 안 오르지 않는가. 나는 2년 전부터 완전히 죽은 국내 미술시장에는 결코 안 판다. 버티는 데까지 버티겠다. 시장의 부침에 따라 놀지 않겠다는 것이다."

- 후학들에게 하고픈 말은?

"요즘 젊은이들은 코스모폴리탄 같다. 그러나 아이덴티티 분명한 사람이 세계적 작가가 된다. 나는 두 가지를 제자들에게 강조한다. 첫째, 네 스승을 닮지 말 것. 둘째, 너희들끼리 닮지 말 것. 나는 평생 '위기'라는 심정으로 살아간다."

● 박서보를 말하다

그는 "나는 남과 달라지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나의 수신(修身)"이라고 한다. 그 과정은 재료와의 긴밀한 교신이다.

그것을 위해 그는 절대 화학풀은 쓰지 않는 청평의 단골 한지 공방에서 나온 한지만 고집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한지가 한번에 완성되는 데 비해 우리의 한지는 3겹으로 만들어지므로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 있어 표현력이 우수하죠."

1980년대 중반 이후 추구해 온 '묘법(描法ㆍecriture)' 시리즈에 대한 그의 설명을 따라가 보자. 먼저 한지 전지(92x66cm)를 잘라 넉 장(30x40cm)으로 만든다, 한지 특유의 섬유질을 살리기 위해 가위나 칼을 안 쓰고 물을 칠해 찢는다.

이후 작업대에 캔버스를 깐다. 하루 12시간 일할 수 있는 분량인 한지 전지 4등분한 것을 물 속에 보름에서 2개월 동안 푹 담근다. 거기에 연필로 하루 종일 금을 긋는다(그는 "민다"고 표현한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3년이 걸리기도 한다.

"참선할 때의 몰아와 꼭 같아요. 온갖 잡념과 형상들로부터 마음을 비우는 거죠." 반복해서 무심히 선만 긋다 보면 밀려서 또 다른 선이 생긴다. 이를테면 물결무늬 같은 밭고랑 무늬다. 그의 그림 그리기는 그래서 무념과 수신의 도구이자 슬로(slow)의 미학이다.

구겐하임미술관 큐레이터 바바라 블레밍크는 "시각적 체험을 초월하는 것을 창조하려는 그의 미술은 서양의 미니멀리즘과는 현저히 다른 차원의 것"이라며 "단순하고 겸손하되 섬세하고 우아하다"고 평했다.

동양쪽 평단은 "고졸(古拙)하다"는 수식을 달아 준다. 서양 평론가들은 "복제와 모방이 극에 달한 오늘날의 문명 현상을 한 걸음 뒤에서 보고 반성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풀이한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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