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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시인 최치언·만화가 변기현 '레몬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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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시인 최치언·만화가 변기현 '레몬트리'

입력
2008.11.1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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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관통하는 대수로 공사를 위해 이라크에 파견된 연구원 성진. 우우우우우웅 울리는, '발신번호 표시제한'이라는 표시가 뜨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놀랍게도 십여년 전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은 첫사랑 미란이다. 성진의 목소리만 부르다가 끊기는 전화. 꿈이었던가. 다시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첫사랑의 호출은 성진과 미란, 미란을 짝사랑하던 문학소년 영수의 대학시절 추억으로 이어지는데….

시인 최치언(38)씨와 만화가 변기현(30)씨의 <레몬트리> (문학세계사 발행)는 한국현대시 100주년을 맞아 시인들의 아름다운 사랑시 24편을 만화로 녹여낸 '만화로 읽는 시집'이다. 성진과 미란의 사랑을 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엔니오 모리코네, 프란시스 레이의 영화음악처럼 애틋한 연애시들이 삽입돼 뭉클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성진이 미란을 처음 만나 네 개의 눈빛이 불꽃 튀는 장면에는 '너를 본 순간/ 물고기가 뛰고/ 장미가 피고/ 너를 본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를 본 순간'이라는 이승훈 시 '너를 본 순간'이, 모래폭풍이 휘몰아치는 이라크의 사막에서 성진이 미란의 환영을 만나는 대목에서는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수로를 따라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는 소리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을 만질 때/ 나는 새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같은 시가 포개어진다.

김기림의 '그 말 한마디',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 등 작고한 시인의 시부터 이성복의 '어두워지기 전에 1', 도종환의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등 현역 시인들의 시까지 두루 배치돼 있다. 그림을 그린 변기현씨는 "만화를 연출하는 것 중 가장 신경쓰이는 것이 시퀀스 간의 연결인데, <레몬트리> 를 만들면서는 시를 대입하는 것만으로 어렵지 않게 연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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