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일본 영화사 니카츠(日活)의 '월급쟁이 감독' 스즈키 세이준(鈴木淸順)은 영화 '살인의 낙인'을 촬영한 후 해고 통보를 받는다. 영화사의 지침과 달리 장르영화의 기존 문법을 깡그리 허문 연출 방법이 화근이었다.
그의 팬과 동료들은 즉각 반발하면서 투쟁대오를 형성했다. 결국 그는 법정싸움에서 승리했지만 1980년 '지고이네르바이젠'으로 재기하기까지 영화계 외곽을 맴돌아야 했다.
가끔 본질이 실존을 앞서는 영화인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 앞에서 자연히 머리가 숙여지면서도 "과연 생활은 어찌할까" 하는 의문 또한 떠나지 않는다. 2006년 중국 감독 로예(婁燁)는 '하얀 궁전'에서 톈안먼 사건을 다뤘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로부터 5년간의 활동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 해 부산을 찾았던 그는 "5년간 차기작을 준비하면 그만"이라며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방한한 오구리 고헤이(小栗康平) 감독은 1981년 '진흙강'으로 데뷔한 이래 최근작 '매목'(2005)까지 27년 동안 불과 5편을 연출했다. 자본의 간섭을 최대한 피하다 보니 과작이 됐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아무리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거장이라지만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을까. 그는 "큰 문제 없이 살아가는 게 나도 참 신기하다. 사실 대학시절 영화를 함께 했다가 사업으로 방향을 튼 친구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본인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지만 아마도 그를 부러워할 한국 영화인이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한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영화인 4명 중 1명이 집세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불우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요즘 같은 경제 혹한기, 어디 영화인들만 어렵겠는가. 누구나 신념보다 생계를, 내일보다 오늘을 더 걱정할 처지일 것이다.
하지만 어둠을 견뎌낸 빛이 더 강렬하지 않은가. 해고 파동 이후 신산한 삶을 살았던 스즈키 감독은 왕자웨이(王家衛)와 쿠엔틴 타란티노, 짐 자무시, 우위썬(吳宇森) 감독 등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는 평가와 함께 지금은 세계적 거장 대우를 받고 있다. 눈 앞의 안락함을 등진 대신 영속적인 명예를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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