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희(44)씨의 두 번째 장편소설 <달을 쫓는 스파이> (민음사 발행)는 욕망이 작동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는 한 편의 인간극장이다. 이 작품은 우리 소설에서 보기 드물게도 박물관 학예사들의 세계를 다룬다. 달을>
축을 이루는 인물은 주인공 현중과 현중의 오랜 연인 홍주, 현중의 후배 승기다. 현중은 유력 정치인이 장인인 잘 나가는 학예사다. 9년 전 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 발굴을 위해 만주로 갔다가 후배 승기를 따라온 홍주와 사랑에 빠진다. 그는 그녀에 대한 승기의 연모의 정을 잘 알면서도 홍주를 독차지하고, 승기의 탁월한 논문을 훔쳐 발표하기도 하는, 자기 욕망의 실현을 위해서는 윤리나 도덕쯤은 무시해버리는 인물이다.
승기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실력은 출중하지만 일과 사랑에서 모두 현중은 그에게 넘기 힘든 벽이다. 그가 취할 수 있는 태도란 술에 취해 현중 앞에서 "나는 기어코 되찾고 말 거예요. 내가 가져야 했던 것들, 돌려받을 거라고요. 그래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겠어요?"라며 주정을 하는 정도다.
두 사람의 관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의 악마적인 둘째아들 이반과 지고지순한 셋째아들 알료샤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작가에 따르면, 실상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타인에 대한 지배욕, 권력욕을 육화시킨 인물들이다. 문제의 여인 홍주는 "열을 얻으려면 적어도 여덟은 주어야 하는, 사랑마저 어쩌면 비즈니스와 같은" 이 냉정한 시대에 "하나도 얻지 못하면서도 열을 주는" 인물이다. 어린 적 오빠를 사랑해 부모와의 연마저 끊긴 그녀는 '오빠를 닮았다'는 이유로 현중에게 빠져들고 그에게 순애보적 애정을 바친다. 카라마조프가의>
작품은 일종의 액자소설 형식이다. 현중-홍주-승기가 '욕망의 삼각형'을 지탱하는 바깥 이야기와, 현중이 작성하는 보고서 내용인 삼국시대 첩자들의 활동을 다룬 속이야기가 맞물려 일그러진 인간 욕망이 들끓고 있는 세계의 진상이 설득력있게 그려진다. 그것은 낯설지 않은데, 거짓말을 해서라도 자기욕망을 실현시키려는 자, 표면상의 원칙을 내세우는 자, 남의 욕망에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려는 자, 욕망의 틈바구니에서 기꺼이 희생양이 되려는 자들이 속고 싸우고 타협하고 자기합리화하는 소설의 세계가 현실을 닮았기 때문이다.
2006년 소설집 <바빌론 특급우편> 에서 근친상간, 동성애 등의 소재를 천역덕스럽게 관능적 문장에 담아 화제가 됐던 방씨는 이번 작품에서도 "태양은 푸른 능을 뜨거운 혓바닥으로 핥고 침을 삼킨다. 그 능선은 할딱거리며 해를 등 뒤로 넘기기 위해 애를 태우는 것만 같다."(31쪽) 같이 더욱 농밀해진 문장을 선사한다. 바빌론>
전북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1994년까지 8년간 경찰병원에서 근무했던 방씨는 소설가 윤후명씨를 사사하고 단편 '새홀리기'로 2001년 동서문학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수많은 이들의 삶과 죽음을 대면하는 병원 생활의 경험은 그에게 "인간이란, 자신의 나약함을 허장성세로 포장하는 인간이란,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가"라는 깨달음을 주었고, 주사기 대신 펜을 잡게 했다고 한다.
"달은 가까이 가고 싶으나 좀체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점에서, 스파이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움직이고 싶어하는 욕망을 지녔다는 점에서 이번 소설의 제목으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는 방씨는 "앞으로는 개인의 욕망을 넘어, 가령 민족주의 같은 공동체가 지닌 욕망의 문제를 다뤄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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