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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미 FTA의 종착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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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미 FTA의 종착점

입력
2008.11.1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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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에서 벗어나 추진된 일은 결국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노명박 정부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한미 FTA가 그렇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에는 한미 FTA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무시하다가 이제는 후안무치하게도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한미FTA 비준을 독촉하고 있지만, 미국 내에서 FTA에 대한 지지가 떨어지고 자동차산업부터 유통산업까지 대규모 고용감축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협상대상국 순서를 그르친 탓

돌이켜보면 이런 식으로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2003~4년, 향후 FTA 전략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을 때만 해도 한미 FTA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칠레 등과의 탐색적 FTA가 체결된 이후 동북아 또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하는 지역 중심의 FTA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우리나라가 비교적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는 중견국가와의 FTA가 거론되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농업부문에서 일부 타격을 입더라도 제조업부문에서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내는 식으로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반면 미국과의 협상은 대등하게 진행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농업과 서비스업부문에서 받는 타격이 클 것으로 봤다. 따라서,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는 국가들과 먼저 FTA를 체결하고 농업 등 취약부문의 체질을 단계적으로 강화하면서 한미 FTA는 장기과제로 두는 것이 순리였다.

하지만, 당시 대북정책 등에 대한 이견으로 균열이 생긴 한미관계를 한미 FTA로 봉합한다는 구상이 2005년에 부상하면서 FTA 전략은 전면 수정된다. 주로 외교안보 분야에서 생긴 갈등을 경제 분야에서 양보하여 해결한다는 이와 같은 발상은 FTA 협상과정에서 우리나라의 협상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미국의 반덤핑 및 상계관세정책 수정이나 전문직 비자 쿼터 확보 등 우리나라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요구사항은 전혀 관철되지 못했고, 섬유부문 등에서도 미국으로부터 최소한의 양보만 받아낼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은 스크린 쿼터 해소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을 FTA 체결에 필요한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실리부터 챙기는 영악함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한미 FTA를 통해 국내 개혁반대세력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이른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논리를 폈지만, 미국은 한가하게 그냥 칼만 빌려주지 않고 투자자-국가소송제 등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독소조항을 포함시켰다.

현재 한미 FTA와 관련하여 우리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한미 FTA가 상호 이익의 균형이라는 원칙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FTA를 폐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양쪽 정부가 합의까지 한 내용을 경제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폐기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남북 정상 간에 이뤄진 6ㆍ15와 10ㆍ4 합의를 정권이 바뀌었다고 폐기하는 것과 같다.

우선 미국 경제상황 지켜봐야

둘째, 현재 합의 내용대로 국회가 우선 비준을 하고 미국 의회의 비준을 독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도 미국이 얼마나 압박을 느낄지 의문이고 오히려 미국 내 경제상황을 고려해 주지 않는 데 대해 불쾌하게 생각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국회가 비준을 한 후 미국이 자동차 부문 등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가장 바람직한 대안은 미국 내 경제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기를 기다렸다가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하면, 한미 FTA의 독소조항을 제거하고 상호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협상을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국내 언론플레이보다 미국과의 협상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임원혁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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