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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웨딩플래너 정정희·김유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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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웨딩플래너 정정희·김유미씨

입력
2008.11.1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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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기에는 1년 365일도 부족하다. 다시 새로운 결혼을 꿈꾼다."

1년을 한결 같이 결혼을 준비하는 자칭 '영원한 신부'(?)의 말이다. 성스러운 결혼식 와중에도 다른 결혼식을 상상하는 그야말로 발칙하고 황당한 신부들이다. 한 해 400번 남짓 전쟁처럼 결혼식을 치르니 너스레가 과장만은 아니다.

그들은 '결혼에 의한, 결혼을 위한' 존재인 웨딩플래너(wedding planner)다. 결혼에 있어 달인과 새내기로 비유되는 CEO웨딩클럽의 웨딩플래너 정정희(47) 부장과 김유미(26) 사원을 만났다. 오후 4시 서울 강남의 청담동에서 그들은 장장 4시간째 한 예비 부부의 웨딩 촬영을 돕고 있었다.

정 부장이 준비한 결혼식만 무려 8,000번이다. 약 1만6,000명의 신랑 신부가 그와 함께 결혼식을 올린 셈이다. 결혼식 준비를 위해 필요한 시간은 6개월에서 최소 1개월. 그간 정 부장은 결혼식장 예단 예복 사진촬영 음식 혼수 등 필요한 모든 절차를 돕는다.

정 부장은 "결혼식은 하나의 이벤트가 아닌 한 부부의 탄생을 축복하기 위한 예식이고, 한 가족과 또 다른 가족의 성대한 만남을 여는 중요한 자리"라며 "정성을 다해 예를 갖춰야 한다"고 지론을 펼쳤다. 그는 "서로 다른 환경, 조건, 성격의 두 남녀가 하나의 결혼식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충분한 배려와 토론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귀띔한 사례는 '태고의 신비'라는 별명이 붙은 커플. 남자는 갓을 쓰는 고전결혼식을 원했고, 여자는 짧은 미니드레스를 흠모했다. 둘을 같은 식장에 입장을 시키려면 설득과 타협뿐이었다. 정 부장은 장장 6개월에 걸쳐 결혼식 절차에 대해 설명과 회유(?)를 한 뒤에야 두 사람의 '웨딩마치'(결혼행진)를 성사시켰다. 그때만 생각하면 등줄기에 식은 땀이 나올 정도란다.

서로 다른 인격체가 만나 혼인을 향해 달려가다 보면 부딪히기 일쑤다. 그래서 조정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웨딩플래너의 사명이다. 더구나 결혼식의 주인공이 아니면서도 더한 요구와 간섭을 하는 양가 부모들의 마음까지 다독이려면 단어 선택에 늘 조심해야 한다. 오죽하면 웨딩플래너의 기본 소양이 바로 어휘력 구사라고 할까.

바쁜 신랑 신부를 대신해 결혼식을 준비하려니 쉴 틈이 없다. 완벽한 결혼식을 원하는 예비 부부들의 충돌을 줄이기 위해 웨딩플래너는 청담동 일대 웨딩 관련 스튜디오, 메이크업 가게, 드레스 점포 등 웨딩전문업체 1,000여 곳 이상을 직접 방문한다.

꼼꼼함은 필수다. 결혼식장을 발굴할 때는 신부대기실, 예식장소, 피로연장뿐 아니라 화장실 변기 개수까지 센다. 규모뿐 아니라 조명, 음식 맛, 의자, 음악까지 살핀다. 웨딩 관련업체가 새로 생겼다는 소문이라도 돌라치면 곧장 뛰어가 드레스를 입어보고, 사진도 찍는다. "일주일에 최소 3~4번은 웨딩업체와 미팅해 소식을 접하고, 매달 발행되는 웨딩잡지 4권 탐독은 필수"(김씨)라고 했다.

그러나 일생의 대사를 앞두고 예민해진 예비 커플, 특히 신부의 의구심과 불만은 쉽게 피해가지 못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혜택'이라는 경제논리는 어디든 빠지는 법이 없다. '말로만 잘해주는 것은 아닐까' '업체수수료를 많이 떼 먹으려고 그런 것은 아닐까' '알아서 다 해줘야지' 등 온갖 의심의 눈초리와 볼멘 소리가 심장과 귓전을 울린다.

심지어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테스트하는 신부도 있다고 한다. 김씨는 "가장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예비 부부일수록 웨딩플래너가 기울이는 정성에 대해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미 결정해놓은 드레스와 결혼식장까지 다시 모두 뒤엎는 신부도 있다"고 했다.

당황은 금물, 신뢰만이 해결의 열쇠다. 단순히 원하는 스타일대로 관련 업체를 연결해 주는 것을 넘어 웨딩 홀 분위기, 드레스 스타일 등 예비 부부의 사소한 요구가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점검해야 함은 물론, 진심으로 다가가는 의사소통 및 관계를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

처음부터 천직(天職)이었던 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정 부장은 1987년 웨딩드레스 가게에서 바느질(드레스 가공 및 제작)을 하다 신부들의 말동무가 되다 보니 어느덧 20년차 웨딩플래너가 돼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황홀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을 면접 소재로 다뤘던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결혼은 현실이다"를 외치며 올해 초 입문했다.

결혼식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정 부장은"요즘 연예인처럼 화려한 결혼식과 이색적인 행사를 많이 펼치는 등 '나만의 결혼식'에 열을 올리는 예비 부부들이 많다"고 했다. 특히 쉽게 만나서 결혼하고 헤어지는 인스턴트식 결혼이 많을 때마다 힘이 빠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 둘이 현장에서 느끼는 결혼식에 대한 철학은 확고하다. "훌륭한 결혼식이 반드시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 '결혼식에 오랜 공을 들이는 만큼 부부의 연(緣)도 오래 지속해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이 숱한 결혼식을 치르면서 가슴 한구석에 담는 바람이다. 그리고 이 둘의 한마디. "이땅의 예비 커플들이여, 결혼식 말고 결혼을 준비하라"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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