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말 우리의 감각엔 중대한 변환이 일었다. '미술이 되는 미디어'의 특권을 지탱해온 기반이 붕괴되고, '기능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직으로서의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소비와 유통의 간극을 은폐하는 디자인 마케팅의 논리'로 치환됐다.
미술은 더 이상 20세기적 의미의 미술일 수 없고, 디자인도 더 이상 20세기적 의미의 디자인일 수 없었다. 이유야 어찌됐건 1990년대의 어느 시점에 현대미술과 디자인이 중첩되기 시작했고, 그 교차점에서 모종의 효용을 발견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디자인 마케팅의 문법을 활용하는 미술가의 존재를 처음 포착한 이는,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였다. 1998년 그는 에세이집 <관계성의 미학> 을 펴내며, "미술 작품의 역할은 더 이상 유토피아적인 상상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데 있지 않고, 작가의 선택에 의해 어떤 스케일로건 실재하는 삶의 방식이나 행위의 모델을 구성하는 데 있다"고 단언했다. 관계성의>
부리오는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필립 파레노 등 몇몇 작가를 "간주관적 결절점을 형성하는 관계적 미술(relational art)의 작가들"로 지목해 옹호했는데, 애초의 전략적 목표는 '1960년대의 진보적 미술에서 제시된 방법들을 당대에 소환해 변용하는 일'에 있었다.
그러나 이후 소위 '관계적 미술'이 드러낸 공통점은 "미술 제도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사회적 프로젝트를 디자인하는 방법"이었다.
반면 메타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주창한 이는 이론가, 교육자 겸 디자이너인 앤서니 던이었다. 1999년 발간한 <헤르츠 이야기> 에서 그는 '기생-기능'이라는 용어를 내세워 제품 인터페이스의 상징 기능에 주목하고, 비평적 소격 효과를 추구하는 디자인 실천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헤르츠>
이후 실용성의 세계에서 살짝 비껴선 채 메타 기능을 구현하는 '비평적 디자인'이 등장해, 무능해진 디자인 방법론의 세계를 일부 대치했다.
지난 10년간 현대미술과 디자인의 중첩에 연루된 크고 작은 전시가 열렸다. 2009년 1월 4일 런던 소머셋하우스에서 폐막하는 순회전 '그럼 좋지 않았을까… 미술과 디자인에서의 소망적 사고'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2009년 1월 7일 종료되는 기획전 '디애니스페이스왓에버'는 각각 '비평적 디자인'과 '관계적 미술'의 다양한 전개 양상을 보여준다.
양 진영의 주요 작가와 디자이너들이 모두 주류의 지위에 오른 오늘, 남은 과제는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성과를 결산하는 일뿐인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새로운 탈출구는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할까?
미술ㆍ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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