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엔 일제강점기를 선지피로 그린 영화나 드라마가 많았다. 대개 순국선열 주연에, 야차 같은 일본경찰과,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친일파가 쌍두마차 조연을 맡았다. 순국선열이 지독한 고문을 받던 장면들이 압권이었다. 나는 누가 주먹만 들이대도 있는 말 없는 말 다 불 것 같은데, 저 분들은 어찌하여 저토록 강인하단 말인가? 무수한 고문에도 의연히 버티며 친일파 주구를 야단치고 일본경찰에게 침을 내뱉는 저 위대함!
그런데 왜 우리의 위대한 순국선열은 만날 붙잡혀서 고문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독립은 대체 언제 이룬단 말인가? 안타깝고 분한 마음에 일본과 일본인과 친일파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개심이 치솟는 것이었다. 다 옛날 이야기다. 글로벌시대다. 뻔하고 케케묵은 줄거리를 가진 순국선열 영화나 드라마는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요새 영화나 드라마의 모던함, 일본의 순정만화나 소설 등을 원작으로 해서 만든 국산영화나 드라마, 국산보다 더 폭넓게 소비되고 있는 일본문화! 이런 세상에 '순국선열의 날'이 아직도 달력에 박혀 있다는 게 야릇하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부터 독립하기 직전까지 헌신 희생하신 분들을 기리는 날이라고 하는데, 문득 옛날에 보았던 고문 장면의 끔찍함이 떠오른다.
소설가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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