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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마타하리' 총살설은 거짓? 여류화가 장위 "30년 더 살다 78년 사망"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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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마타하리' 총살설은 거짓? 여류화가 장위 "30년 더 살다 78년 사망" 주장

입력
2008.11.1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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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만주국 수립 과정에서 일본 간첩 등으로 활동하다가 중화민국 정부에 의해 반역죄로 1948년 총살당한 것으로 알려진 '동양의 마타하리' 가와시마 요시코(川島芳子)가 실제로는 30년이나 더 생존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도쿄신문과 지지(時事) 통신, 산케이 신문 등 일본 언론은 16일 중국 신문화보(新文化報)를 인용해 가와시마가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지난 1978년까지 살았다는 증언과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전했다.

'남장미인'으로 유명한 가와시마의 죽음과 관련해선 처형된 직후부터 다른 사람이 대신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소문이 끊임 없이 나돌았다. 신문화보에 따르면 일본인 고아 출신으로 창춘에서 활동하는 여류화가 장위(張鈺 41)가 가와시마의 행적을 증언했다.

장위의 어머니를 입양했던 중국인 외할아버지 돤샹(段翔)이 86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 장위에게 “네가 어렸을 적에 돌봐주던 팡(方) 할머니가 사실은 가와시마 요시코다”라고 말하며 가와시마가 생전에 그린 그림 등 유품을 물려주었다는 것이다. 장위 친척들은 돤샹과 가와시마가 내연관계였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가와시마는 처형장에서 바꿔치기된 뒤 돤샹과 다른 동료의 도움으로 1949년 창춘의 신리청에 정착했다고 한다. 장위는 “팡 할머니가 가르쳐준 노래 가운데 가와시마가 작사한 ‘몽고의 노래’등이 포함돼 있다”고 회고했다. 경찰에 몸을 담았던 돤샹 사망후 발견된 팡 할머니의 유품 가운데에는 일 관동군 관련 정보 외에 은제 비녀와 프랑스산 망원경 등 당시 일반인이 구하기 어려웠을 물건들이 포함돼 있다.

원래 숙친왕(肅親王)의 14번째 딸이었던 가와시마는 청나라가 망한 뒤 일본 낭인 가와시마 마나니와(川島浪速)에게 양녀로 보내졌고 청말 어전시위였던 돤샹의 외삼촌은 숙친왕과도 절친한 사이였다. 가와시마와 돤샹의 인연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일본식 교육을 받은 가와시마는 20살 때인 1927년 뤼순에서 몽고족 장군의 아들과 결혼했지만 2년 만에 이혼한 뒤 상하이로 가서 첩보기관에서 일하는 다나카 류키치(田中隆吉)와 사귀면서 스파이 길에 들어서게 된다. '상해사변' 등 일본군의 모략공작에 관여한 가와시마는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발발하고 다음해 일본의 괴뢰정권인 만주국이 세워지는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때문에 가와시마는 일본에서 ‘동양의 잔 다르크’로 불려지기도 했다.

일본 패망후 국민당군에 의해 체포된 그는 '한간(漢奸 매국노)'으로 기소돼 1948년 총살당한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처형이 비공개였고 안면에 총탄이 관통해 신원을 판별하기 힘들었던 점 등 때문에 그의 생존설은 꼬리를 물었었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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