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사원 정모(36)씨는 요즘 널뛰기 증시 탓에 조울증에 걸릴 지경이다. 틈만 나면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곁눈질한다. 1년 전 아버지 예금까지 털어넣은 뭉칫돈(-70%)이 크게 물려있지만, 다행히 최근 며칠간 단타매매로 재미를 봤다. 그는 "오후 3시10분(장 최종마감)이 지나서야 비로소 일이 손에 잡힌다"며 "마지막으로 빌린 돈(2,000만원)이라 절대 까먹을 수 없다"고 했다.
#2. 이모(37)씨는 지난달 말 월급을 통째로 주식에 투자했다. 수시로 이 종목, 저 종목 들락날락했지만 현재 수익률은 마이너스 8%대. 최근의 변동장세를 이용해 재미를 봤다는 동료들이 많아 상대적 박탈감은 더하다. 그는 "각종 공과금과 카드사용 납기일전까지 본전만이라도 뽑았으면 했는데, 늦었다"고 푸념했다. 빼지도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고 있다.
요즘 주식깨나 안다는 직장인들 사이에선 "돈 좀 버셨소" 가 인사다. 폭락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급등하는 증시가 개인들을 홀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수가 하락한 13, 14일(각 4,000억원대)에도 개미들은 열심히 주식을 사들였다.
"이틀 만에 20% 먹었대." "별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바로 상한가 치대." 귀가 가려울 정도다. 위험천만한 '유혹'이지만, 최근엔 일면 사실이기도 하다. 기존의 엄청난 손실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겠다는 보상심리와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시샘까지 곁들여졌다.
소위 '악에 받친 개미'들이 증시를 장악하고 있다. 투자 삼각편대(기관 외국인 개인)의 균형이 9월부터 깨지더니 최근엔 전형적인 개미장세가 연출되고 있다. 이 달 들어 개인 매매 비중은 전체의 65%대까지 치솟았다. 2007년 6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2003년 이후 4번째에 해당하는 이례적인 현상"(곽병렬 대신증권 연구원)이라고 했다.
이상한 게 또 있다. 같은 기간 개인의 순매수 규모(290억원)는 매매비중이 20%도 안 되는 기관(9,078억원 순매수)에 비해 턱없는 적었다. 기관이 막강한 자금력으로 승부한다면, 개미들은 인해전술 전법을 쓴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이는 개미들이 순식간에 치고 빠지는 단타매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증거다. 그간 증시를 나락으로 내몬 공포심리(패닉)가 줄어들고, 개인이 증시 반등국면을 이끄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정상적인 수급을 논하기엔 일러보인다.
개미가 증시를 기웃거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변동성이 극심한 장에서 너도나도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개별 종목들이 순식간에 반토막 나거나 52주 신저가를 갈아치우면서 주가 복원력도 예측을 초월한다.
잘만하면 돈을 벌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긴 단타매매도 엄연한 투자기법 중 하나, 꼭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일부에선 저가에 들어갔다 고가에 빠지는 개미자금을 '스마트 머니'(Smart Money)라고도 부른다.
그렇다면 개미들은 원(願)대로 부자가 됐을까. 대신증권이 최근 보름간(10.31~11.14) 투자주체별 순매수 상위 20위 종목의 평균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투신(9.14%) 연기금(3.70%) 외국인(3.58%)은 수익을 냈다. 하지만 개미들은 -5.90%로 돈을 털렸다. 원금의 30% 이상 손해 본 종목(하나금융지주 -31.04%)도 있었다.
본디 돈 번 얘기는 부풀려져 떠돌지만 돈 잃은 아픔은 애써 감추기 마련. 안수웅 LI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상무)은 "미국과 달리 우리는 아직 숨어있는 진짜 폭탄(악재)이 다 드러나지 않은 상태라 겁 없이 단타매매를 했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며 "현재는 더 큰 기회를 위해 현금을 비축할 때"라고 했다. 조심스러운 증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아직 우리 증시는 바닥을 찍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무엇보다 급히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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