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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어덜트 파워' 문화 접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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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어덜트 파워' 문화 접수하다

입력
2008.11.1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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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과 가요의 경계를 허문 가수 장사익의 공연에는 초대권이 없기로 유명하다. 곡을 쓰는 데 도움을 준 시인들 외에는 '공짜표'가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공연장은 항상 만원이다. 그것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관객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그의 공연도 역시 인산인해였다. 온 세계가 휘청거리는 불황에도, 장사익의 공연은 1996년 이후 이어온 유료관객 만원 기록을 이어갔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장사익의 공연이 다름아닌 중장년 소비층에 어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치료 받는 기분이다"

문화계에는 '어덜트(30대 후반 이상 중년)를 노리면 대박 난다'는 말이 정설로 떠돌기 시작했다. 음반과 DVD를 국내 유통하는 외국 회사들이 "한국시장을 포기한다"며 짐을 싸고 돌아서는 요즘에도 장사익의 공연처럼 중년이 몰두하는 문화상품은 흥행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장사익의 이번 세종문화회관 공연은 사흘 동안 3,000여석을 모두 채운 것도 모자라 오케스트라 피트(무대와 객석 사이 오케스트라가 위치하는 공간)에도 좌석이 놓일 정도였다.

이미 공연 3주 전에 예매가 마감됐다. 주최측은 "40대와 50대 팬들이 관객 대다수를 차지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중년 팬들로 이뤄진 클럽도 1만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들은 한결같이 장사익의 공연을 보며 '치료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고 말했다.

해외 뮤지션들의 내한공연 트렌드도 소비력이 20대보다 강한 어덜트를 향해 기울기 시작했다. 올해 내한한 안드레아 보첼리, 듀란듀란, 셀린 디온 등은 모두 중년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티스트들이다. 업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비틀스의 멤버 폴 메카트니와, 스티비 원더의 내한공연을 위해 개런티를 놓고 주판알을 열심히 튕기는 중이다.

빌리 조엘의 내한공연(15일)을 기획한 비포에이치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공연 예매가 주로 인터넷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티켓 판매로 중년 이상 관객의 비중을 계산하기는 힘들지만 최근 이른바 대박공연의 경우 30대 후반 관객이 50%를 넘긴 것으로 알고 있다"며 "빌리 조엘 공연을 추진하면서도 골프장에 오가는 연령층이 충분한 구매력에 향수를 느낄 것이라 생각해 이들을 타깃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 '맘마미아' 열풍의 이유

올해 드러난 '어덜트 파워'의 절정은 무엇보다 영화 '맘마미아'와 이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음반의 대흥행이다. 스웨덴 출신으로 1970년대를 풍미한 혼성그룹 '아바'의 히트곡들이 주요 콘텐츠로 쓰인 이 두 상품은 중년 소비자들의 몰표를 받았다. 9월 4일 개봉한 '맘마미아'는 전국에서 448만3,000명(12일 기준)의 관객이 들었다.

10월말을 기준하면 주말 관객 수가 개봉 초기(30만명)에 비해 6분의 1인 4만~5만명 선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평일 관객은 개봉 초기(6만5,000명)의 절반 수준(2만~3만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낮 시간 활용이 용이한 중년 이상 여성층이 '맘마미아' 흥행 견인의 주역으로 파악되는 이유다.

'맘마미아' 사운드트랙 앨범은 7월 발매 이후 14만 장(13일 현재)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2000년대 들어 팝 음반으로는 최다 판매량이다. 음반을 내놓은 유니버설뮤직은 당초 연내 판매 목표량을 15만 장으로 잡았다가 어느 정도까지 목표를 높여서 수정해야 할지 즐거운 고민에 빠져있다.

유니버설 관계자는 "영화를 보고 나온 중년 관객들이 선물용으로 몇장씩을 한꺼번에 구입한 사례가 많았던 것으로 안다"며 "중년층이 음반매장에 몰리면서 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다른 음반도 추가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전반적으로 음악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은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또 1980년대 헤비메탈에 탐닉했던 중년층의 호응으로 메탈리카의 신보는 메탈의 불모지인 국내에서 1만5,000장이 넘게 팔렸고, 클래식 음반인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도 주 시청층인 주부들이 몰려 발매 한 달 만에 3만7,000장이 팔리는 등 어덜트 파워를 실감하게 했다.

무대도 예외는 아니다. 예매사이트 인터파크INT에 따르면 월간 1위(13일 현재)를 달리고 있는 태양의서커스 '알레그리아' 예매자 분포에서 40대 이상이 무려 27.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뮤지컬 '고교얄개'도 40대 관객 비중이 12%에 이른다.

■ 30~40대는 진정성에 열광한다/ 추억을 건드리면 열릴 것이니…

대중문화시장이 10~20대에 포커스를 맞추기 시작한 것은 벌써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40대를 중심으로 한 중장년층의 문화 구매력은 결코 작지 않다.

사회적으로 과장, 차장의 지위에 오른 30대 후반~40대들은 그만큼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회사일과 가정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 은밀한 도피를 꿈꾸는 이들이다.

제대로 자극하기만 한다면 폭발적으로 문화상품을 구매함으로써 몰래 품어온 도피욕과 과시욕을 실현하려는 세대다. 그 자극은 그들의 추억과 꿈을 건드려주는 일이다.

어떻게 건드릴까. 40대를 중심으로 한 중장년에게 어필하려면 '추억'을 자극하되 위안이 될 만한 '판타지'가 있어야 하며, '고급스러움'으로 포장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국립극단 권혜미 기획위원은 "뮤지컬들이 잇달아, 그리고 영화 '맘마미아'가 크게 성공한 것은 아날로그적인 분위기의 음악이 향수를 자극했고, 드라마의 내용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거로의 여행이라는 점에서 현대사회의 속도감에 지친 40대를 위로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맘마미아'의 노래는 추억이고 드라마는 곧 판타지였다는 것이다.

고급스러움이라는 흥행 코드는 다소 중첩적인 의미를 띤다. 무조건 값비싸거나 순수예술을 지향한다고 중장년에게 다 어필하지는 못한다. 현재의 감각으로 재구성되거나, 또는 386세대에게 잘 통하는 단어인 '진정성'으로 그들의 지적 갈망(혹은 허영심)을 충족시켜 줄 경우 고급문화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386세대는 어린시절 TV를 통해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고 자라 문화적으로 앞서 있다고 여기는 동시에, 20대의 청춘을 어수선한 정치사회적 분위기에서 학생운동으로 보내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결핍감이 내면에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4년 가수 이수영의 리메이크 음반 '클래식'이 30~40대를 사로잡으며 38만장이나 나갔던 것은 '고급스럽게 재구성된 추억'을 팔았던 덕분이었다. 그런가 하면 장사익의 공연을 보러 가는 '아줌마'들은 대중콘서트를 즐기면서도 스스로 '뭔가 의미있고 의식있는 컨텐츠를 즐긴다'고 여긴다.

평일에 30~40대 여성 관객이 몰리며 13만명 관람의 대박 기록을 낸 '매그넘 코리아 사진전'도 이와 비슷하게 '의식있는 사진전'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따지고 보면 중장년층은 언제나 대중문화시장의 소비자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이 대중문화시장에서 떠나가는 것은 그들의 탓이 아니다. 그 감성과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 컨텐츠의 생산자, 그들을 활동적인 구매층으로 여기지 못하고 흥행 코드를 제대로 읽지 못한 대중문화시장의 실패일 뿐이다.

■ 조승우도 울고 갔다/ 어설픈 복고·식상한 향수는 외면당해

10월 2일 개봉한 영화 '고고70'은 충무로의 흥행 기대주였다. 인기배우 조승우가 주연한데다 만듦새도 매끄럽다는 호평을 두루 받았기 때문이다.

제작사도 어두웠던 1970년대를 질주했던 청춘의 열정과 흥겨운 음악이 어우러진 이 영화가 20대와 중장년층을 아우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관객 동원은 70만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불황기 흥행 필살기라 할 복고 코드를 가진 '고고70'이 왜 시장의 외면을 받았을까. 충무로 관계자들은 타깃층의 불분명함을 주요 패인으로 꼽는다. 20대에게 영화 속 70년대는 너무 낯설고, 중장년층에게는 영화에 쓰인 소울 음악이 귀에 설다는 것이다.

한 영화평론가는 "영화는 좋다지만 특정 관객층의 충성도를 끌어낸 만한 요소가 부족했다"며 "특히 중장년층은 귀에 익숙한 당시의 주류음악을 기대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봉 시점도 좋지 않았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중장년층이 단풍놀이 떠나는 10월에 개봉한 것부터 잘못"이라며 "연말 모임을 겨냥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고풍 영화임에도 정작 중장년층의 요구와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게 결국 흥행 실패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2004년 히트상품 중 하나였던 7080콘서트는 '고고70'과는 정반대의 이유로 요즘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지나치게 과거에만 얽매여 중장년층이 발길을 돌렸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음반기획사 JNH의 이주엽 실장은 "7080콘서트 류의 공연은 처음엔 향수를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새로운 것을 재구성하지 못하면 관객을 끌어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잊혀진 계절'의 가수 이용은 "추억을 파는 것만으로는 팬들의 사랑을 계속 받을 수 없다. 신곡을 꾸준히 발표하며 새로운 면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양홍주 기자

김희원 기자 hee@hk.co.kr 라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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