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미국 대통령이 앞으로 많은 대책을 내놓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미국 경제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을 겁니다. 우선 사람들의 아픔부터 어루만져줘야 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
손성원(64)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의 대답은 다소 의외였다. 미국 월가(街)에서 '경제지표 수치를 가장 잘 맞추는 족집게'로 통하는 그의 입에서 이코노미스트보다는 정치인에 더 어울리는 '서민의 아픔', '신뢰' 같은 단어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본보와 전화인터뷰에서 "경제에서 문제가 불거졌지만 경제를 뛰어넘는 해법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리더십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미국경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더 나빠질까요.
"그럴 겁니다. 미국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고 있고 그 하락폭은 더 커질 것입니다. 10월 미국의 실업률은 6.5%를 기록했는데, 내년에는 8%까지 올라갈 것으로 봅니다. 내년 하반기가 돼야 터널 끝 희미한 불빛을 볼 수 있을 겁니다."
- 왜 그렇죠? 무엇이 문제인가요.
"정부가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가 무슨 일을 해도 먹히지 않습니다."
- 그럼 오바마 체제에선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단기적으로는 국민들에게 아픔이 너무 많습니다. 직장 잃은 아픔, 돈 잃은 아픔, 집 잃은 아픔…. 오바마 당선자는 그 아픔들을 덜어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의회에서 승인한 7,000억달러 중 쓰지 않은 돈을 서민을 위해 풀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주택 모기지의 60%를 갖고 있는 페니메이와 프레디맥 등을 통해 주택차압을 막고 모기지 이자 감면, 만기연장 해줘야 합니다. 26개월이면 끝나는 실업급여를 연장하고, 경기부양책으로 감세와 인프라 투자 등도 고려해야 합니다."
- 그런 대책이 근본적 해법은 아니지 않습니까. 문제를 뿌리뽑으려면 더 고통을 감내하고 더 가혹한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으로 경제공황을 극복한 줄 아십니까. 전혀 아닙니다. 진짜 공황을 끝낸 건 2차 대전이었죠. 다만 공황을 극복할 때까지 국민들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이 당시 새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의 리더십이었습니다. 새로운 대책들을 계속 내놓음으로써 '경제위기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준 것이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졌고 결국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킨 것이죠. 오바마 당선자도 국민들의 신뢰부터 회복시켜줘야 합니다."
- 이 모든 위기는 뿌리는 부동산가격 하락이었습니다. 결국 집값이 좀 회복되어야 문제가 풀릴 것 같은데, 미국 부동산 시장은 요즘 어떤가요.
"최근 주택매매규모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 이후에는 집값이 조금씩 안정될 거라고 봅니다. 현재 집값은 2006년 최고치에 비해 약 18% 내려왔는데 25%까지 빠질 겁니다. 그 시점이 내년 중순쯤 되리라 봅니다."
-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어도 문제는 여전히 남지 않을까요. 자동차산업 문제 같은…
"미국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예를 들어 미국 고용의 8분의 1이 주택시장에 달려 있습니다. 건설분야도 있지만 중개업이나 금융업 등 관련직종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 GM 파산이 임박했다는 외신이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자동차 산업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생존은 힘들겠죠.
"저와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 자동차업계가 살아 남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일단 노동자 코스트(비용)가 너무 커요. 대우나 도요타와 비교하면 노동자 비용으로 인한 가격 차이는 차 한대 당 1,500달러나 될 정도에요. 가격 뿐만 아닙니다. 이들은 휘발유 많이 먹는 큰 차만 만들고 고유가ㆍ녹색성장 시대를 대비한 소형차 등은 거의 만들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력인 크고 비싼 차들조차 일본 유럽 등에 밀리고 있습니다. 때문에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이들이 부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봅니다."
- 금융얘기를 좀 해보죠. 월가를 이끌었던 투자은행(IB) 시대는 이제 끝난 건가요.
"정확히 말하면 월가에서도 투자은행의 시대는 이미 20년 전부터 천천히 수명을 다해왔다고 봐야 합니다. 씨티,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이 이미 상업은행, 투자은행 2가지 역할을 모두 하고 있었어요. 마지막 남은 투자은행이던 리먼, 베어스턴스는 이미 미국 금융의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이번 위기를 통해 미국 금융시스템의 변화가 마무리된 거라고 봐야 합니다."
- 특이한 것은 미국경제가 저렇게 망가졌는데도 달러화는 오히려 강세입니다. 역설적인 상황인데, 앞으로도 이 달러화 강세 기조는 雍撻?楮?
"단기적으로는 강세가 지속될 겁니다. 국제 투자자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한국과 같은 신흥국가에서 돈을 빼 안전한 미국으로 보내고 있거든요. 그러나 금융시장이 안정되면 돈도 각국으로 돌아갈 거고, 달러 강세도 꺾일 겁니다. 사실 미국 재정적자가 1년에 1조달러에 이르는데 달러강세가 지속될 이유가 없거든요. 내년 하반기 이후에는 분위기가 확실히 바뀔 겁니다."
- 유럽쪽은 어떻습니까. 미국보다 오히려 심각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미국은 이미 고통을 많아 받아서 해결을 모색할 시점이 됐지만, 유럽은 이제 고통 시작입니다. 미국보다 고통이 더 클 겁니다. 유럽에는 미국보다 더 많은 투자은행이 있지만, 여러 국가로 쪼개져 있어 대응이 쉽지 않습니다. 노동비용이 미국보다 더 커서 기업 생산력도 낮구요."
- 혹자는 이번 위기가 중국, 일본 등 아시아국가에게는 기회가 될 거라고 하던데요.
"중국 일본의 문제도 생각보다는 큽니다. 중국은 내수 비중이 45%밖에 안되고 수출입이 매우 중요합니다. 국제경제가 침체되면 무역이 잘 안돼 당장 경제성장률에 문제가 생길 겁니다. 작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1%였지만 금년 말에는 6~7%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중국의 인구증가율을 생각하면 대량 실업사태를 유발할 수 있는 수치에요. 그럼 경제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고, 다시 정치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거거든요. 물론 재정흑자를 기반으로 경기부양책을 다양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은 장점입니다."
- 일본은 이번 금융위기에 직접적 타격을 입지 않아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지 않았나요. 실제로 일본은 미국 유럽의 혼란을 틈타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모습인데요.
"일본의 가장 큰 약점은 내수입니다. 잃어버린 10년 이후 수출이 잘 돼 기업은 성장했는데도, 국민들의 월급은 늘지 않았어요. 개인이 쓸 돈이 없다는 얘기죠. 그나마 수출 때문에 경기를 유지한 건데, 앞으로 세계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 수출마저 힘들어 더 문제가 될 거에요. 결코 간단한 상황이 아닙니다."
- 한국경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정부에서는 그래도 4% 전후 성장을 전망하던데…
"제 생각에는 잘해봐야 3%, 또는 그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건 한국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출이 침체되면 성장률이 낮아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 최근 한국은행이 금리를 큰 폭으로 내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좀 더 더 과감하게 내리라고 권하고 싶네요. 물론 최근 0.75%포인트 내린 것은 잘했다고 보지만 더 과감하게 많이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국민들에게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겁니다. 또 기준금리만 보면 아직 유럽,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높습니다. 급한 불부터 끄고 봐야 합니다."
- 앞서 정부의 리더십, 신뢰회복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요. 지금 한국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리더십은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미리 대책을 내놓는 것입니다. 문제 생기고 수습하는 건 리더십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의 금리인하, 감세 등은 잘 한 겁니다. 더 적극적으로 금리 내리고 유동성 늘려야 합니다. 미국 연방은행처럼 재할인창구 열어 기업들이 더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태가 진정되면 그때 유동성을 다시 거둬들이면 됩니다. 보다 선제적으로, 보다 과감하게!"
◆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은행가 집안 출신으로 광주일고를 졸업한 뒤 도미, 플로리다주립대, 하버드 MBA를 마친 뒤 피츠버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3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고, 이후 30년간 웰스파고은행에서 일하면서 정확한 경제전망으로 명성을 얻었다. 2006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주요 경제지표 수치 전망을 가장 잘하는 이코노미스트로 꼽았다.
◇ 약력
▲1944년 광주 출생 ▲광주제일고ㆍ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MBAㆍ피츠버그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1973년 미국 백악관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수석경제관 ▲1998년 미국 웰스파고은행 수석부행장 ▲2005년 미국 LA한미은행장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문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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