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평도 채 못되는 살갗/ 차라리 빨려 들고만 싶던/ 막막한 나락// 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 불후의 입술// 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 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 너로 가득찬 나는 텅빈, // 허공을 키질하는/ 바야흐로 바람 한 자락)('와락' 전문)
무관해 보이던 두 존재가 숙명적 끌림에 의해 합일되는 찰나,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고, 시인은 그 일순(一瞬)을 '와락'이라는 부사로 포착한다.
정끝별(44ㆍ사진)씨의 네 번째 시집 <와락> (창비 발행)은 사랑시집이다. 그 사랑의 변주들은 겨울의 들머리, 헛헛해져가는 마음을 '와락' 품어줄만큼 따뜻하다. 그 사랑은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세상의 등뼈'에서)처럼 전면적이기도 하고, 잠든 딸과 남편에게 저린 팔 말없이 내주며 '몸 위에 몸을 내리고/ 팔베개 돌이 되어/ 소스라치며 떨어지는 당신 잠에/ 내 비명이 닿지 않도록/ 내 숨소리를 죽이며'('저린 사랑'에서)처럼 은근하기도 하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시인의 눈은 설렁탕집에서 우연히 합석한 남녀의 눈빛이 안타깝게 엇갈리는 순간을 잡아내거나('설렁탕집과 로맨스'), 춘장대의 깊은 가을숲에서 춘정을 불태우고 나오는 중년 부부를 유심히 관찰할 정도로('춘장대 동백숲') 전방위적이기도 하다. 와락>
이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어를 사랑이라 한다면, 형식적 특징은 표제작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듯 부사어를 이용한 자유분방한 언어유희라고 할 수 있다. 뒤로 돌아 도랑에 나란히 오줌을 누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묘사한 '도랑도랑', 불러주는 이 없는 독신자가 어느 일요일 오후에 느낀 공복감을 '따라락 딱딱 꾸꾸루꾸루 빈 뱃속의 노래'로 옮긴 '캐스터네츠 선데이' 등은 동사 없이도 제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부사의 쓰임에 주목한 시들이다. 부사의 리듬감을 활용해 존재와 존재 사이의 교통을 이루려는 시적 고투를 보여준 정씨는 '시인의 말'에서 "여기에서 여기 너머로 다리를 놓는다. 너를 따라 이 삶을 통과하고 있다. 나는 너를 그렇게 시라고 부른다"라고 썼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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