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과학의 주류는 합리주의적 접근방법을 따르고 있다. 합리주의에서는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가능하며 따라서 연구자와 상관없이 객관적인 세계는 존재한다. 연구자는 객관적 세계를 바탕으로 세상의 이치나 사실관계를 설명하는 실증주의적 방법론을 견지한다.
이와는 달리 흔히 성찰주의로 불리는 접근방법은 완전한 객관적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주ㆍ객관의 구분을 부정하며 모든 개념이나 이론 및 사고방식은 누군가를 위해, 또는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딱딱한 얘기를 늘어놓은 것은 역사교과서 수정 논란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합리주의가 맞는지, 성찰주의가 옳은지는 여기서 직접 관심사는 아니다. 다만 후손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역사교과서를 놓고 어른들 고집의 연장인 이념 싸움은 그만 하자는 것이다.
전 참여정부 인사와 현 이명박 정부 인사들이 각종 공조직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역사교과서 수정 논쟁도 그 연장에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현 역사교과서가 좌편향이므로 이를 수정하라는 권고안을 내 놓았다. 지난 정부 때 스스로 '검인정'을 해 준 역사교과서를 정부가 바뀌자 졸지에 좌편향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자던 소가 웃을 일이다.
일부 교과서 집필진은 더 한심하다. '한국 근현대사 집필자 협의회 참가 교수 일동'은 현 정부가 역사 교육을 '길들이려' 하고 있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정부의 '입맛'에 맞는 역사교과서를 쓴 인사들이 지금은 현행 법을 무시하며 몽니를 부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법이 잘못됐어도 학자라면 일단 지키고 나서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 대통령령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제6조 1항에 의하면, 검정 교과서의 수정이 필요할 때 교과부 장관은 저작자 혹은 발행자에게 수정을 명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현 역사교과서는 문제가 많다. 객관적 사실을 도외시한 민족 분단의 책임 문제, 미군은 점령군이고 소련은 해방군이라는 식의 북한 역사관적 괴변, 대한민국 건국과정에 대한 일방적 해석 및 역대 정부 정통성에 대한 감정주의적 폄하 등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역사교과서는 단순히 과거를 배우는 것이 아니며 역사의 해석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 재단된다. 역사교과서는 우리 청소년들의 역사관, 국가관 형성에 직접 관련된 중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현행 교과서 수정은 길들이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 수립을 위한 시대적 소명이다.
유영옥 경기대 국제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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