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의 파고가 높다. 그 해일에 어디까지 잠길지 가늠조차 어렵다. 불황의 그늘 속에서 꺼내 든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1,000원은 당신의 무거운 어깨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절망일 수도 있다.
또 당신에게 1,000원은 요긴한 생활 수단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하루를 즐겁게 할 수 있는 행복이자 사치가 되기도 한다. 1,000원을 통해 2008년 11월 한국인의 삶을 살펴보자.
나는 2007년 12월 한국조폐공사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는 정말 빳빳하고 향긋한 신권이었지요. 남들은 나를 보며 새해에 세뱃돈으로 풀릴 1,000원 지폐라고 했습니다. 그 때 나는 얼마나 우쭐했는지요. 나를 받아들고 함박웃음을 지을 고사리손을 고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웃음뿐만 아니라 한숨과 조바심, 눈물도 만났습니다.
기억 나는 사람 중 한 명은 1월 나를 내고 달러를 산 어느 아저씨입니다. 그 때 아저씨는 나를 내고 몇 십원을 거슬러 받으며 1달러를 살 수 있었습니다. 이달 우연히 다시 만난 그 아저씨는 나를 보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 미국에 자식을 유학 보내고 외롭게 사는 기러기 아저씨는 내가 헐값이 되었다고, 1달러도 살 수 없다고, 나를 원망합니다. 괜히 나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얼마 전 나를 손에 넣은 아주머니는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르는 내내 나를 만지작거렸습니다. 아주머니는 정말 고민이 되었나 봅니다. 친환경과일 코너의 신고배 1개 3,980원이라는 표지는 본 척도 않습니다. 1단에 1,180원짜리 포항초 시금치와 1개 1,280원짜리 무 하나가 눈에 들었지만 나를 내고 살 수는 없습니다.
아주머니는 양배추(980원)와 순두부(750원)를 들었다 놨다 하더니 결국 콩나물 한 봉지를 집어들고 나를 계산대에 내밀었습니다. 그날 아주머니는 콩나물을 씻어 콩나물밥을 짓고 간장을 얹어 식구들의 한 끼 식사를 차렸을 것입니다.
가게에서 밤을 지내고 아침 일찍 또 다른 아저씨를 만납니다. 이 아저씨는 지하철을 내리자 지갑에서 나를 꺼내 들고 출근길 아침거리를 찾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1,000원이었던 김밥 한 줄이 이제는 모두 1,500원입니다. 도너츠·커피 전문점의 크림치즈 바른 베이글(2,300원)이나 머핀(2,000은)은 어림도 없습니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계란빵에 시선을 돌립니다. 700원. 한 개로 아침을 대신하기엔 어림없어 보이는데다 자판기 커피(400원)라도 곁들이려니 100원이 모자랍니다. 꼬치에 끼운 어묵 2개를 먹을 수 있지만 싫은가 봅니다. 결국 아저씨는 편의점으로 들어섭니다. 아저씨의 눈은 캔커피(1,000원)와 호빵(700원)을 거쳐 결국 미니 컵라면(800원)에 꽂힙니다.
편의점 계산대 위에서 뒹굴고 있는 나를 본 점원은 신문을 펼칩니다. 심심풀이 삼아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주식이 얼마나 될까 주식시세표를 살펴봅니다. 점원은 미국 뮤추얼펀드계의 신화로 꼽히는 존 템플턴을 떠올립니다.
2차대전 직전 폭락한 증시에서 1달러보다 싼 104종목을 100달러어치씩 샀다가 전쟁이 끝난 뒤 보니 3분의 1은 휴지조각이 됐고 3분의 2는 크게 올라 1만달러가 4만달러가 됐다는 이야깁니다.
코스닥시장은 대부분 액면분할주(액면가 500원)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주식이 거의 3분의 1입니다. 네오쏠라나 코어세스와 같은 100원대 주식은 8장까지 살 수 있습니다.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게 그렇게 없더니, 여기서는 또 이렇게 지천이라니요! 반토막 난 펀드로 속앓이 할 이들의 심정이 느껴집니다.
오늘 나는 일곱살짜리 아이의 행복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로부터 용돈으로 나를 받은 이 아이는 나를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고는 문방구로 달려갔습니다. 아이는 갑작스런 나의 등장 덕분에 공주 스티커로, 막대사탕으로, 캐릭터 연필로 온갖 사치를 부리며 꿈을 꿉니다.
나는 아저씨의 절망이었다가 한 가정의 저녁거리였고 공상이자 꿈이 되었습니다. 지금은요? 나는 지금 어느 돼지저금통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나는 그 누군가의 희망인가 봅니다.
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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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000원, 10년전 IMF때와 가치비교하니…
1,000원의 가치를 통해 본 우리의 생활수준은 지난 10년 사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1998년 1,000원은 지하철로 기본구간을 왕복하고도 100원이 남는 돈이었지만 이제는 편도(800원)만 가능하다. 최근 진정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석유값은 10년 전보다 크게 뛰었다.
휘발유는 10년 전 1,000원으로 820㎖를 넣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550㎖뿐이다. 경유는 3배나 비싸져 1,820㎖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650㎖에 불과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에게는 훌륭한 한 끼 대용식인 봉지라면은 10년 전 1,000원짜리 한 장으로 2개(419원)를 끓여 먹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1개(602원)가 고작이다. 362원에서 625원으로 오른 우유(200㎖)도 마찬가지다.
소주(360㎖)도 10년 전에는 1병(700원)을 사 마실 수 있었지만 이제는 1,000원에 6잔 꼴이다(1,150원). 반면 맥주 1캔(500㎖)은 10년 전에도 1,000원으로는 살 수 없었지만 가격은 1,400원에서 1,150원으로 떨어졌다. "맥주 가격은 5,6% 올랐지만 주세가 130%에서 72%로 내려갔기 때문"(하이트진로 유경종 문화팀장)이다.
감자와 고구마는 1998년 1,000원으로 각각 660g, 즉 2,3알쯤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감자 400g, 고구마는 230g만을 살 수 있을 뿐이다. 1,000원에 3개를 사고도 100원을 남겼던 오이(300원)는 이제 593원으로 2개 사기가 어렵다. 사과도 10년 전 개당 700원으로 1,000원에 1개 반을 샀다면 이제는 3분의 2쪽만 살 수 있는 가격(1,480원)이다.
드물지만 10년 전보다 더 많이 살 수 있는 물건도 있다. 작황 등 경기 외의 변수가 작용하는 농산물이 그렇다. 10년 전 통배추(2.5㎏) 1개는 1,500원이었지만 지금은 1,280원이고 호박(500g)은 1,000원에서 700원, 파(1㎏)도 1,500원에서 1,480원으로 떨어졌다.
'10년 후' 1,000원의 가치는 훨씬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이정수 사무총장은 "최근 단기간에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 가격이 크게 올랐고, 이제 1,000원으로 살 수 있는 생필품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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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원숍 '불황 속 호황'
껌 한 통에도 1,000원을 넘나들 정도로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요즘 1,000원의 가치가 새로워지는 곳이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보다 매출이 20%나 급증하며 때 아닌 호황을 누리는 곳, 1,000원숍이다.
12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주택가의 1,000원숍 체인점. 평일 오후 4시 30분 매장 안은 50여 명의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 넥타이를 맨 회사원, 아기를 업은 주부, 머리 희끗한 할머니까지. 하루 방문객 수가 800~850명에 달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 이 곳을 찾는다는 자칭 '1,000원숍 마니아' 장기선(22·대학생)씨는 "불경기라 용돈도 5만원이나 줄었다"며 "자취에 필요한 생필품들을 싸게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장씨는 고무장갑, 수세미, 세제를 구입했고 "시중가보다 2,000~5,000원까지 싸다"고 말했다.
장식용품 코너에는 연신 "우와~, 진짜 싸다"를 연발하는 고등학생들이 모여 있다. 남자 친구 생일 선물을 사러 온 윤은혜(19·고등학생)양은 "이렇게 큰 포장용 상자랑 리본끈, 과자 등 8개나 샀는데 1만2,500원 밖에 안 들었어요! 다른 데서 사면 3만~4만원은 깨졌을 텐데"라며 흡족해했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라는 주부 이병옥(48·마포구 염리동)씨는 가격에 비해 만족스러운 품질을 인정한다. "일단 싸고, 물건이 다양하죠. 솔직히 질도 1,000원의 두 배 가치는 하잖아요?"
이들이 입을 모아 내세우는 1,000원숍의 매력은 "싸다"는 것이다. 실제 매장 물건들 중 절반은 1,000원짜리, 나머지는 2,000~3,000원이니, 비싸 봤자 3,000원 아닌가.
근처 대형 할인점에서 한 켤레에 1,450원인 B고무장갑이 두 켤레 묶음에 1,000원이다. 할인점에서 6,000원인 쿠킹호일, 2,000원인 위생장갑, 4,260원인 락스가 이곳에선 모두 1,000원 한 장으로 살 수 있다.
과분하다 싶은 패션상품도 있다. 백화점에서 팔릴 듯한 화려한 넥타이가 2,000원, 보통 1만원이 넘는 스킨, 로션, 파우더, 아이섀도도 3,000원에 팔린다.
그러나 애용자들도 싸다는 이유만으로 호락호락 넘어가지는 않는다. 이광희(48·사업자)씨는 "일주일에 한번은 꼭 들러서 생활용품을 산다"며 "하지만 중국산이 많은 식품 같은 건 믿음이 안 가 절대 안 산다"고 했다.
그는 양복 차림에 검정색 가방을 들고 쭈그려 앉아 압축팩을 골랐다.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와서 구경한다는 주부 김아자(64·마포구 노고산동)씨도 "멜라민이다 뭐다 해서 시끄러우니 중국산은 찜찜하다"고 한다.
그는 원산지가 표시되지 않은 컵을 가리키며 "뭘로 만들었는지 안심이 안 되니 절대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참을 손에 들고 고민하던 넥타이 걸이대도 결국 다시 제자리다.
매장 내 국산 제품은 50%, 중국산이 40%, 나머지 일본, 동남아, 유럽 제품이다. 잘 알려진 브랜드를 모방한 감자칩이나 섬유유연제도 있다. 섬유유연제의 경우 이름은 비슷하지만 향의 가짓수가 적고 용량도 적다.
1,000원이면 눈감아줄 법도 한 원산지며 성분까지 소비자들은 다 따지는데 1,000원숍은 무엇 때문에 호황을 맞고 있을까. 5세 딸과 함께 매장을 찾은 주부 진영(40)씨가 정답을 말했다.
"비닐장갑 같은, 한번 쓰고 버릴 소모품은 좋지요. 하지만 오래 써야 할 그릇이나 안전성을 따져야 할 음식은 원산지도 따져보게 되죠. 국산이 아니면 사기가 꺼려져요."
이정수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1,000원숍은 과자 한 봉지 값으로 생활용품을 살 수 있다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자극한 판매 전략으로 성공하고 있다"며 "하지만 엄격한 품질보증 노력이 계속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현정기자 agada@hk.co.kr
강유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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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나눔·웃음·활력… "고맙다 1000원"
지난 일요일 북한산을 찾은 공무원 김모(42)씨는 하산 길에 우연히 1,000원짜리 지폐를 발견했다. 10원이나 100원짜리 동전이라면 그저 눈길만 던져줬을 텐데 1,000원이 어딘가. 덥석 지폐를 집어 든 순간 김씨는 소스라쳤다.
급하게 '일'을 처리한 누군가의 흔적이 지폐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1,000원이 드디어 휴지로 전락하다니…." 김씨는 혀를 끌끌 차며 주말을 마감해야 했다.
'휴지'로까지 신분이 고속 추락하고 있는, 서러운 1,000원. 웬만한 군것질은 모두 감당할 수 있었던 과거의 위력은 온데 간데 없다. 하지만 1,000원에서 10만원권 수표 못지않은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누군가는 단돈 1,000원으로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 누군가는 1,000원으로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삶의 먼지를 털어낸다.
■ 1,000원으로 정과 사랑을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이남민(32)씨는 짬이 나면 도심의 대형서점을 찾는다. 예쁜 그림과 디자인의 카드와 엽서를 사기 위해서다. 딱히 정해진 쓰임새도, 1,000원이라는 가격의 부담도 없다.
카드와 엽서를 틈틈이 모아 두면 기다렸다는 듯 친구의 생일이 닥치고, 직장 동료의 결혼식이 찾아온다.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기쁩니다. 그것도 큰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직장인 박지현(30)씨에게 1,000원은 좀 더 넓은 사랑을 의미한다. 못 입고 못 먹는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 수 있고, 자신의 주머니 사정도 압박하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자선 금액이어서다. 직장인 김명현(46)씨에게도 1,000원은 자선의 다른 이름이다. 김씨는 "1,000원권이 없다면 노숙자들의 삶도 더 팍팍해지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한다.
■ 가족 행복의 또 다른 이름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1,000원의 힘은 배가된다. 취학 전 아이가 응석을 부리는 가정에서라면 더할 나위 없는 윤활유다. 공기업 과장인 오상진(34)씨는 일곱 살 아들이 칭얼댈 때마다 동네 구멍가게 앞으로 향한다.
보통 1,000원이면 가능한 '장난감 뽑기'를 하기 위해서다. 울상이던 아이의 얼굴이 단 몇 초 만에 활짝 펴지는 광경 앞에 오씨는 1,000원의 숨은 마력을 새삼 확인한다.
■ 스트레스 해소의 동반자
30대 직장인 최은영씨는 "1,000원은 일상의 답답함과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주는 돈"이라고 말한다. 일에 지치고 졸음이 엄습할 때면 차가운 캔커피를 찾는다는 최씨에게 1,000원은 지친 삶을 다독이고 응원해 주는 삶의 활력소 역할을 다한다.
고명주(32)씨에게도 1,000원은 고단한 삶의 탈출구다. 야근 다음날이면 고씨는 종종 일반버스에 오른다. 목적지는 따로 없다. "도심 속으로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거죠. 버스를 타고 이곳 저곳을 다니다 보면 낯익은 서울의 풍경이 이름 모를 도시의 그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 그래도… 1,000원은 생활이다
대학생 문수아(23)씨는 최근 차비가 없어 현금인출기를 찾았다가 발을 굴러야 했다. 은행 잔고는 겨우 1만원. 수수료 1,000원이 있어야 돈을 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문씨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걸어야만 했다.
영화감독 지망생인 이민호(35)씨에게도 1,000원은 생활이다. 도서관 등서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마다 그는 김밥이나 초콜릿, 도넛으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한다. 이들의 가격은 물론 1,000원이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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