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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지리산 구룡계곡의 만추, 떠나가는 가을 붙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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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지리산 구룡계곡의 만추, 떠나가는 가을 붙잡다

입력
2008.11.1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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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점점 짧아지고, 저무는 시간이 아쉽다. 강원 산자락엔 벌써 흰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다. 떠나는 가을을 마냥 붙잡고 싶다. 가을이 오래 머무는 따뜻한 남녘의 하늘로 마음이 기울어진다. 그 남녘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지리산으로 향했다. 이제 막 단풍이 절정을 맞고 있는 어머니산, 지리산의 가을을 잡으러 떠나는 여행길이다.

지리산의 수많은 계곡과 산길 중 고른 코스는 전북 남원 땅에 깃든 구룡계곡이다. 만복대 고리봉 세걸산으로 이어진 지리산 서북능선의 왼쪽 자락이다. 구룡폭포에서 육모정까지 4.5km되는 계곡길은 수려한 산세와 깎아 세운 듯한 기암절벽으로 이어진다.

산행 코스는 구룡폭포에서의 하행길을 택했다. 시작점은 구룡사다. 절 입구의 작은 연못 아래 비탈길로 접어들었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극심한 가뭄에 호남의 웬만한 저수지는 바싹 타들어 갔다는데, 넉넉한 지리산 품에선 귀한 물줄기가 시원스레 흘러내리고 있었다.

30m 길이의 비스듬히 누운 와폭인 구룡폭포는 '남원 8경'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는 절경이다. 9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폭포는 동편제 소리꾼에겐 득음의 폭포다. 박초월 강도근 등 명창들이 이 폭포 소리와 겨루며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갔다. 지금도 여름이면 소리를 배우는 이들이 이곳에 캠프를 차리고 몇날며칠을 득음에 매진한다.

폭포 주변에는 최근 설치했는지 널찍한 새 나무 계단이 놓여 있다. 낙엽이 떨어진 나무데크 옆으로 계곡길이 이어진다. 마른 단풍이 부서져내려 길은 사각거렸다. 좁은 오솔길은 내내 물길과 함께했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됐다.

험한 곳에서는 오래 전에 설치한 낡은 쇠난간이나 목책이 자연에 동화된 풍경을 이루고 있다. 구룡폭포의 새로 놓인 나무계단보다 훨씬 정감있다. 반듯하지만 거추장스러운 새 길을 벗어나 맞이한, 낡았지만 몸에 딱 맞는 헌 길이다. 가을의 색감에 어울리는 퇴락한 길에는 시간의 더께가 두껍게 내려앉았다.

길은 칼날 같은 능선 위로도 타고 올랐다. 발 아래 양 옆으로 물소리가 휘감는다. 능선의 중간쯤 확 뚫린 시야에 들어온 풍경. 단풍이 짙게 물든 거대한 숲 한가운데를 협곡이 흘러내려갔다. 주홍빛 치마를 쭉 찢어 놓은 듯 구룡계곡이 절정의 가을을 갈라 놓았다.

물이 바짝 마른 비폭동과 지주대, 유선대 등 구룡계곡의 9절경인 구룡구곡을 지나는 길. 유선대에 다다르니 물 옆으로 너른 바위가 나타난다. 산길에 고생한 다리를 쉬며 가을 바람에 마음을 씻어낼 수 있는 공간이다. 노란 나뭇잎을 투과해 들어오는 볕에 가만히 마음의 가을을 뜸들이는 공간이다.

휙하니 한자락 바람이 분다. 하늘에서 무수한 잎들이 부수수 떨어진다. 바닥이 아닌 공중의 낙엽들. 가을의 낙하는 현재진형형이다. 낙엽이 뺨을 스치고 어깨를 두드렸다.

구룡폭포에서 시작된 구룡계곡 길은 육모정에서 끝난다. 용소를 이룬 계곡의 널찍한 암반에는 6개 기둥을 한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큰 물길에 정자가 휩쓸려 간 후 길 위쪽에 지금의 정자가 만들어졌다. 정자 앞에는 춘향묘가 있고, 인근의 용호서원은 노란 은행잎으로 화사하다.

남원=글·사진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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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정령치서 숨고르는 가을 끝자락… "잘가라"

구룡계곡은 정령치(해발 1,172m)를 넘는 지리산 고갯길의 입구 격이다.

남원의 주천면 읍내를 지나 내기리를 거쳐 정령치에 오르는 12km의 코스는 가을의 지리산을 만끽하는 최고의 드라이브길이다.

육모정을 지난 60번 지방도로는 구절양장의 산굽이를 돌고 돌아 오른다. 길 옆의 벼랑 아래로 구룡계곡의 협곡이 지난다. 내기리를 지나 고기삼거리에서 737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오른쪽으로 오르면 정령치다. 속리산의 말티재, 신안 흑산도의 12굽이 고갯길을 능가하는 지그재그 산굽이길로 이어진다.

정령치는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에게 성을 쌓고 지키게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개 꼭대기의 정령치 휴게소는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다. 동으로는 바래봉과 뱀사골 계곡이, 서쪽으로는 천왕봉과 세석평전 반야봉 등과 남원의 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라 정령치의 가을은 이미 깊었다. 산정의 나무들은 모든 잎들을 떨군 채 가지만 앙상히 남았고, 나풀대던 억새도 누렇게 삭아버렸다.

구룡계곡 입구인 주천면의 용궁마을은 지금 마을 전체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알알이 루비알 같은 산수유 열매들이 잔뜩 매달렸기 때문이다. 산 하나 사이의 구례 산동마을만큼 유명하지 않지만 이곳도 산수유가 많다.

1,000주가 넘는 산수유 나무들이 집의 담벼락이나 계곡 옆에서 자라고 마을 한복판에는 40~50년 된 산수유 수백그루가 마치 과수원처럼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 군락 가운데 키가 10m를 훌쩍 넘는 거대한 산수유 나무가 눈에 띈다. 200년이 더 된 고목으로 아직도 붉고 싱싱한 열매를 맺고 있다.

용궁마을의 이름은 이 마을 동쪽 영제봉에 있던 부흥사라는 큰 절에서 기원한다. 그 절은 고승과 선사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휴양했던 곳으로 경치가 아름다워 '지상의 용궁'이라 불렸다고 한다.

남원=글·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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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수첩/ 지리산 구룡계곡

● 남원시내에서 주천 방향으로 가다가 주천읍 사거리에서 좌회전, 60번 지방도로를 타고 지리산국립공원 방향으로 향한다. 길가의 육모정을 지나 내기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구룡암이 보인다.

구룡암 앞에 남원시에서 조성한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 차를 대고 이정표를 따라 구룡폭포로 내려가면 된다. 구룡암에서 더 직진해 구룡사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지만 길이 좁고 주차 공간도 협소해 불편하다.

● 육모정에서 구룡폭포까지 오르는 코스는 2시간, 반대로 내려오는 코스는 1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 남원의 대형 숙박시설은 일성지리산콘도(063-636-7000), 토비스콘도(636-3663), 중앙하이츠콘도(626-8080), 한국콘도(632-7400) 등이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우수 중저가 숙박업소인 '굿스테이'로 지정된 곳은 그린피아모텔(636-7209)이 있다.

● 추어탕은 남원의 대표 음식. 광한루원 인근 요천변에 천거동을 중심으로 추어탕 거리가 형성돼 있다. 50년 전통의 새집추어탕(625-2443)과 남원추어탕(625-3009) 등이 소문난 곳이다.

지리산 자락의 흑돼지도 유명하다. 운봉의 황산토종정육식당(634-7293)은 남원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고깃집이다. 삼겹살과 함께 내놓는 순대국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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