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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社 죽든말든… 대형철강사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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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社 죽든말든… 대형철강사 횡포

입력
2008.11.1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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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근과 형강 등 철강제품 원료인 고철(스크랩)을 수입해 국내 철강업체에 납품하는 A사는 최근 황당한 일을 당했다. 재벌 계열인 B철강사가 구매하는 조건으로 고철 5만톤을 들여왔는데, 가격 폭락과 품질 저하를 이유로 아직껏 200억원 가량의 납품대금과 터미널 사용료 등 부대비용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 해외 공급업체의 국내납품 대행사인 C사 대표는 국내 굴지의 D철강사 얘기만 나오면 화가 치민다. D사가 연간 계약을 통해 스테인리스강의 필수 원료인 크롬을 일정량 매입키로 했으나, 지난달 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기 때문이다.

겉으론 상생경영을 외치며 국내 최고 기업임을 자랑하는 대형 철강업체들의 횡포에 원료 납품업체들이 죽어가고 있다. 금융위기로 실물경제 침체가 가속화하자,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나 계약 해지를 통해 자신들의 피해를 협력업체에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 철강사 횡포의 가장 큰 원인은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원자재(고철, 크롬 등)값 급락. 지난해부터 오름세를 타던 고철값은 올해 6월 톤당 735달러까지 폭등, 학교 교문을 떼어가는 '고철 도둑'이 극성을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경기침체와 미국발 금융위기 탓에 급락세로 돌아섰고, 지난달에는 6월의 25% 수준(150달러)까지 폭락했다.

납품업체를 통해 수입계약을 맺었던 철강업체 입장에선 수백 달러 비싼 가격에 고철을 매입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자 우월적 지위의 대형 철강사들은 예컨대 톤당 500달러에 들여온 고철을 '콸러티 클레임'(제품 질 저하에 따른 이의제기) 등을 이유로 300달러에 공급하라고 떼를 쓰거나 아예 대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

납품업체 관계자는 "계약서에 정한 가격이 있지만, 철강사가 '질이 안 좋다'며 가격 인하를 요구하면 제대로 항변도 못한다"며 "법적으로 대항하고 싶지만, 그건 곧 납품을 영원히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누구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국내 최대의 고철 사용업체인 B사는 비상경영을 이유로 이미 제철소 야적장에 쌓인 물량에 대해서도 대금 지급을 미루는가 하면, 컨테이너로 싣고 들어온 고철에 대해선 터미널 및 컨테이너 사용료를 수입업체 측에 전가하고 있다. D제강과 S베스틸도 비슷한 방식으로 납품업체들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해 B사는 "최근 고철 가격이 급격히 떨어져 납품업체와 합의 하에 가격 인하 등을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고, D철강사는 "일방적인 계약 해지가 아니라, 급격한 생산량 감소 탓에 공급업체와의 합의에 따라 4분기부터 납품을 받지 않은 것이다. 일부 물품대금 지연도 제품 검수 지연에 따라 발생했다"고 밝혔다.

물론, 고철값과 환율 변화를 잘못 예측해 스스로 화를 키운 납품업체도 있다. 한때 톤당 1,000달러까지 오른다는 소문에 사재기에 나선 업체들의 경우 환율 급등과 고철값 폭락, 대출 중단의 삼중고를 겪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계약의 신의성실 원칙을 무시한 채 가뜩이나 어려운 입장의 납품업체들에게 피해를 전가한다는 점이다.

대형 철강업체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와 대금 지급 지연으로 부도 위기에 몰린 일부 고철업체 사장들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경기 안산에서 모 대형 철강업체에 고철을 공급하던 납품업체 대표가 자살하는 등 3~4명이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최초 계약서와 다른 계약조건 변경은 공정거래법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지속적인 거래 과정에서 지위 남용을 했는지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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