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말을 아낀다. 언론의 관심도 가급적 피한다. 호사가들은 '은둔형 최고경영자(CEO)'라 부풀리고, 직원들은 "좀 샤이(shy)한(숫기가 없거나 조심스러운) 분"이라고 소개한다. '아시아 대표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야망을 품은 증권사의 수장치곤 언뜻 소심해보인다. 김성태(56ㆍ사진) 대우증권 사장은 과연 그럴까.
#김 사장은 3일 30만 고객에게 편지를 보냈다. "심려와 아픔을 함께하고 최선을 다해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간단한 메시지였다. 주가폭락과 변동성 심화로 한치 앞을 장담할 수 없던 터라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 시장 상황이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깊이 고개를 숙여도 비난을 면치 못한 동종업계 CEO도 있었으니까. 김 사장은 그날 지점에도 나타나'대우증권이 증권시장 회복에 앞장서겠습니다'라는 배지를 직원에게 달아줬다. 자신감을 말이 아닌 글과 행동으로 표현한 셈이다.
#그는 매달 해외출장을 거르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지론 때문이다. 대우증권은 지난해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브라질 등지의 금융회사에 이어 올해는 아시아 최대 이슬람은행 CIMB 및 카자흐스탄의 간판 IB 할릭파이낸스와 업무제휴를 체결했다. 촘촘한 해외네트워크 구축은 김 사장의 친정(親征) 덕분이다. 나설 자리는 절대 떠넘기거나 마다하지 않는다.
CEO의 주요 덕목이 '고객중심, 현장중심'이라고 한다면 김 사장은 '소심'보다 '적극'에 가깝다. 다만 말과 몸을 무겁게 해 효과를 극대화할 뿐이다. 해외 선진IB(씨티은행 뱅커트러스트)에서 20년 넘게 잔뼈가 굵은 대표적인 국내 IB전문가다운 행보다.
고객과 현장에 마음을 뺏긴 그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그의 소신을 존중해 서면으로 질문을 했다. 명징하고 일목요연하다. 글의 힘이다.
-금융에 이어 실물경제까지 복합위기다. 지난해의 사상 최대, 업계 최고 영업실적도 올해는 빛이 바랬다.
"회사의 건전성과 체력 확보가 우선이다. 8월부터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했다. 유동성 자금도 1조원 이상 확보했다. 올해 도입 완료한 차세대 리스크관리 시스템이 투자 위험 및 파생상품 리스크 등을 실시간 관리하고 있다. 변동성을 확대하는 극심한 불안심리는 다양한 금융시장 안정책과 실물경제 부양노력으로 곧 진정될 것이다."
-유수의 글로벌 IB가 무너졌다. '아시아 대표 글로벌 IB'의 꿈은 중단 없나.
"전체 IB모델이 실패했다는 일각의 비판은 과장이다. 과도한 레버리지(차입)와 극단적인 파생상품 설계가 문제였을 뿐이다. 기존의 기업 대상 인수 주선 및 투자 자문, 건전한 자기자본투자(PI)는 여전히 각광 받는 사업 영역이다. 대우증권은 'IB컨설팅 영업'에 초점을 맞춘다. M&A본부(자문영업 기반 강화) 및 심사부(리스크 통합관리) 신설이 경쟁력이다."
-구체적인 복안은 있는가.
"대공황, IT버블 붕괴, 9ㆍ11테러(미국), 외환위기, 카드사태(국내) 등 영원히 지속되는 위기는 없다. 그래서 기회다. 물론 성급하거나 과도한 시도는 금물이다. 철저한 리스크관리와 충실한 기존 성장전략 수행이 우선이다. 자산관리(WM) 비중 확대, 인프라 구축, 해외네트워크(Global Alliance) 확보 등 통합시스템을 통해 '한국형 IB모델'을 제시하겠다."
시스템 외에 그가 신봉하는 건 사람이다. 입만 열면 "사람과 시스템이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할 정도. 업계를 선도하는 우수인력을 수없이 배출해 '증권사관학교'라고 불리는 대우증권의 역사와도 궤를 같이 한다. 직원의 10%(300명 가량)는 IB, WM, 리서치, 서비스 등 늘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다. 그는 "금융회사는 오직 사람으로부터 시작해 사람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스펙(학점 영어점수 자격증 등)보다 인성(열정 도전 창조 혁신 등)을 본다"고 했다.
그는 "신바람 나는 회사"를 강조했다. 직원의 아이디어를 일주일 안에 현장에 반영하는 프로그램(Do it WOW), UCC캠페인을 통해 임직원간 수평문화를 조성하는 운동(We Can Change Anything) 등은 조직원들의 사기와 명예를 드높이고 있다는 평이다. 특히 취임이후 매달 거르지않고 전달의 실적현황과 주요 의사결정, 업계 동향 등을 설명하는 동영상 'CEO Letter'는 '열린 경영'의 생생한 증거다.
어려운 시기지만 사회공헌 활동도 쉬지않고 있다. 4 반세기 역사를 지닌 여직원 자원봉사모임(햇살회), 기부릴레이 및 각종 지원사업 등이다. 김 사장은 "지금보다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고 했다.
8월 대우증권은 24년의 애환이 서렸던 여의도 본사 건물을 되찾았다. 7년5개월 만이다. CEO입장에선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더욱 흔들리지 않는다. 마음 편히 머물 곳(사옥)이 있고, 믿고 따르는 식구(潭殆?가 있고, 거친 파고를 넘을 방주(시스템)가 있고, 무엇보다 20년 실무로 쌓아온 자신감이 있기에.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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