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뒤 2000년 정권교체에 성공하면서 8년간 대만 총통을 지낸 천수이볜(陳水扁ㆍ58) 전 총통이 11일 부패 혐의로 체포됐다.
대만 검찰 특별수사팀의 천윈난(陳雲南) 주임은 이날 천 전 총통을 6시간 동안의 조사를 거쳐 정식 체포한 뒤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천 전총통은 이날 밤 타이베이 법원으로 영장 심리를 받기 위해 가던 도중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AP통신은 민진당 입법의원의 말을 인용,"법원으로 이송되기 직전 천 전 총통이 머리에 부상을 입었고 법원은 영장 심리를 미루고 천 전 총통을 병원으로 후송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천 전총통이 어떤 경위로 다쳤고, 부상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영장 심리는 빠르면 12일 재개돼 구속여부는 12일 이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천 전총통의 체포가 발표된 후 대만 방송들은 수갑을 찬 천 전 총통이 검찰청에서 법원으로 이송되는 장면을 방영했다.
천 전 총통에 대해 구속 영장이 발부되면 첫 전직 대만 총통 구속으로 기록된다. 중국과의 통일에 반대하고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을 대표하는 천 전 총통의 구속은 대만 정국에 상당한 파장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천 전 총통은 해외 자금 불법 송금사건과 관련해 이날 다섯번째로 검찰에 출두하면서 자신의 체포를 예감한 듯 "친중 정책을 펴는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대만 독립을 주장해온 나를 구속해 중국을 기쁘게 하려 한다"며 "대만 독립 만세"를 외쳤다.
천 전 총통은 돈세탁, 공금 자산 침범 등 4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천 전 총통은 총통 및 타이베이 시장 재직 시절 조성한 선거자금 및 정치자금의 일부인 9억 대만 달러(약 300억원)를 해외 13개국의 금융기관을 통해 돈세탁하고 아들 천즈중(陳致中) 부부 등의 해외계좌에 보관했으며 정부 비밀 업무 추진비인 국무기요비 1,480만 대만달러(6억여원)를 유용해 아들 결혼식 비용 등 사적 용도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혐의가 인정되면 천 전총통은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어 상당기간 감옥에서 지내야 한다.
불법 해외 송금 사건의 경우 천 전 총통의 부인 우수전(吳淑珍) 여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우여사의 친정 오빠, 아들 부부 등이 연루돼 가족 전체가 검찰 수사를 받는 치욕을 당했다. 천 전 총통의 최측근 추이런(邱義仁) 전 국가안전회의 비서장 등 8명도 해외 송금과 연루됐다는 이유로 구속돼 사건은 천수이볜 전 정권 차원의 비리로 비화했다.
이번 사건은 1994, 98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 및 2000, 2004년 총통 선거 당시 기업 등으로부터 돈을 거둬 비자금을 조성한 뒤 퇴임에 대비, 해외로 빼돌렸다는 점에서 '대만판 5공비리'라고 할만하다. 이 사건은 또 민주화운동의 기수로 청렴한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해 총통에 오른 한 정치인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중국과의 통일을 반대하면서 대만 독립을 추진하던 민진당 등 정치 세력의 위축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대만 독립 추진 세력들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 마잉주 정부에 강렬히 저항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때문에 대만 정국은 상당기간 극단적인 대치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 천수이볜 前총통은
천수이볜(57)은 부패 스캔들이 드러나기 전만 해도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대만 내성인(중국 내전 이전에 중국 대륙에서 대만으로 건너간 사람)의 영웅이었다. 게다가 중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받고 국립 대만대 법학과 3학년 때 최연소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머리도 좋았다.
그는 야당의 거물 황신제가 1979년 정부의 정당결성금지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자 변론을 자청해 처음 주목을 받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2년 뒤 타이베이 시의원에 당선됐다. 85년에는 펑라이다오라는 반체제 잡지를 제작한 혐의로 8개월 간 옥고를 치렀고 86년에는 대만 독립을 주창하는 민진당 창당을 주도했다. 89, 92년에는 연속으로 입법의원 선거에서 당선됐으며 94년에는 야당 후보로는 최초로 타이베이 시장에 당선됐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 해에 천수이볜을 '21세기의 젊은 지도자 100명'에 선정했다. 2000년에는 총통에 당선돼 대만 정치 사상 최초로 여야 정권 교체를 이뤘다. 정치적으로는 대만독립, 반중, 친일, 수교국 확대 등을 지향했다.
부인 우수전 여사는 천 전 총통의 대학 동기다. 천수이볜의 선거운동을 돕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남편이 펑라이다오 사건으로 수감되자 입법의원 선거에 대신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로 부부가 쌓은 명성은 물거품이 됐으며 도리어 부패 정치인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차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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