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악역이라고 하시는데, 아리영 때랑은 전혀 달라요. 은재는 정말 처절하게 당하기만 해요."
2002년 MBC 일일드라마 '인어아가씨'에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딸 아리영 역할을 맡아 이복동생의 애인을 빼앗을 만큼 지독한 복수극을 펼친 배우 장서희(36). 그가 이번엔 남편에게 버림받고 다른 여인으로 변신해 남편을 다시 유혹하는 엽기적인 아내 역으로 돌아왔다. 지난 7일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 촬영현장에서 장서희를 만났다.
6년 전 아리영의 장서희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입술을 질겅거리다가도 한없이 사랑스러운 여인의 모습으로 이복동생의 남자를 유혹하는 치밀한 이중성을 보여줬다. 이번엔 복수를 위해 남편을 유혹하는 더욱 매혹적이고도 악랄한 팜므파탈 연기를 펼친다.
"저는 분명 다르다고 생각해요. 아리영은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내재된 상태에서 처음부터 복수를 해요. 하지만 은재는 초반엔 완전 바보예요. 모든 걸 참기만 하는 조선시대 여자 같아요. 대본을 볼 때마다 어휴~, 답답해서 가슴을 막 쳐요.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요."
'아내의 유혹'은 앞으로 두 달, 40회 분량 동안 남편 교빈(변우민)과 자매와 같은 친구 애리(김서형)의 외도에도 마냥 기다리고 인내하는 답답한 은재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며, 은재의 변신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장서희는 은재를 아리영과 같이 한 사람 안에 내재한 이중성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인격으로 재탄생된 "1인 2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가 이번에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하는 걸, 한번 심하게 아팠던 사람은 알 거 같아요. 자기 삶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맞았던 사람들은 삶을 사는 방식이 다르대요. 이 여자는 죽었다 다시 살아난 여자잖아요. 얼마나 자기 삶을 바꿔보고 싶겠어요."
이 드라마는 겁탈, 불륜, 엽기적인 복수 등 아침드라마처럼 자극적이고 통속적인 소재들을 총집합시켜 놓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장씨는 "욕하면서도 보는 드라마가 될 것"이라며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배우의 입장에서 그런 말도 다 맞다고 생각해요. 우리 드라마 아마 욕하면서 보실 건데, 그럴수록 좋아요. 욕하면서도 빠져서 보는 드라마라는 게 그만큼 관심있다는 말이니까요. 물론 비현실적이기도 하겠지만, 요즘은 드라마보다 더한 일도 많잖아요."
얼마 전 종영한 SBS '조강지처클럽'처럼 다소 자극적이더라도 주부 시청자의 속내를 긁어주며 시청률을 끌어올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장서희는 "당연히 방송사에선 시청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동조했다.
장서희에게 아리영은 당시 31세의 조연배우였던 자신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준, 부정할 수 없는 그림자와 같다. "아리영에게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살아오면서 슬펐던 것을 다 연기로 표현할 수 있었고, 모든 걸 바쳐 1년 동안 후회가 없는 연기를 했어요. 그래서인지 나중엔 이유 없이 아팠어요. 우울증 비슷하게…."
장서희는 '인어아가씨' 이후 '회전목마' '사랑찬가' 등 잇따라 드라마 주연을 따냈지만 역할 몰입에 실패했다는 자책감에 한동안 시달렸다고 했다. 그는 "이번엔 연기 좋다는 말은 듣고 싶어요. 신인이 아니니까 어설픈 연기는 하지 않을 거예요"라며 강한 자신감으로 갈음했다.
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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