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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33> 흑백 교육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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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33> 흑백 교육문제

입력
2008.11.1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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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1년에 혈혈단신 미국에 왔다. 당시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최강국으로 유학을 온 것이다. 식당에서 접시를 닦아 번 돈을 모아보니 그 당시 한국 공무원 봉급의 2배가 됐었다. 그러니 차마 집에다 손을 내밀 수 없어 닥치는 대로 노동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주변의 많은 미국인들이 너희 나라에 텔레비전이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창피했지만 없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한국엔 라디오가 고작이었다. 어떤 여학생들은 한국 사람이란 게 창피해 일본인 행세를 하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대학 (Chaffey College)에서도 구내식당에 가면 흑인 학생들은 한쪽 구석에 따로 앉아 백인들과 섞이길 싫어하는 것 같았다. 동양 사람인 나는 백인 학생들 틈에 끼여 앉아 흑인 학생들을 멀리서 쳐다봐야 했다. 흑인들은 대개 남부 온타리오 빈민촌에 살았는데, 내 눈으로 봐도 흑인들에 대한 차별은 뚜렷했다.

이후 30년 뒤인 1992년, 지금부터 불과 16년 전에 미 연방 의회 의원이 됐을 때도 나는 공화당 출신으로 백인들만 있는 의석에 끼여 앉아야 했다. 민주당 의석을 보면 보통 20~30 명의 흑인 의원들이 섞여 앉아 웃고 떠드는데 나는 1961년대 학교 구내식당에서와 똑같이 백인들 사이에 끼여서 멀리 흑인 의원들을 쳐다봐야만 했다.

주변의 동료 공화당 의원들에게 공화당엔 어째서 흑인 의원이 하나도 없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나를 멀거니 쳐다보며 "우리도 민주당 같이 흑인이 많았으면 좋겠느냐" "흑인 의원들은 흑인 지역구를 대표하는데 공화당에는 다행히도 흑인 지역구가 없다" "흑인 의원들의 의사당 연설을 귀담아 들어 보았느냐, 그들은 항상 정부에 더 달라고만 한다" 는 등의 대답이 돌아왔다.

미국의 국회의사당은 한국과는 그 구조가 아주 다르다. 한국 의사당처럼 명패와 컴퓨터가 있는 지정석은 없고, 한 가운데 통로가 가로질러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의원들은 아무데나 앉아도 된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복도를 가운데 놓고 왼쪽은 민주당, 오른쪽은 공화당 의원이 앉는 관례가 200 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가끔 한 두 사람 민주당 의원들이 공화당 쪽으로 넘어와서 공화당 의원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딱 갈라져서 앉는다. 그래서 우리 의원들은 서로 상대 정당을 부를 때 "The other side of aisle" (의사당 가운데 통로 저쪽) 이라 부른다. 의사당 뒤에는 의원 휴게실이 민주당 쪽에 하나, 공화당 쪽에 하나씩 따로 있다. 나는 한번도 민주당 휴게실을 가 본 적이 없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둘 다 똑같으리라 믿는다.

공화당 쪽 휴게실엔 간단히 식사를 할 수 있게 식탁이 마련돼 있고 침대도 몇 개 있다. 소파들을 나란히 놓아서 편히 휴식을 취할 수도 있게 했다. 휴게실에서는 간혹 야한 농담으로 웃음꽃을 피울 때도 있었다. 더러는 듣기 민망한 조크도 있었는데 그 중에는 흑인들을 상대로 한 것들이 많았다.

겉으로 내보이진 않지만 아직도 이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엔 흑인을 멸시하는 마음을 어쩔 수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흑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농담도 그 내용이 모욕적인 언사일 때는 불법이기 때문에 무척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법으로도 개인의 편견과 선호를 바꿀 수는 없는 모양이다.

민주당이 제기하는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는 교육 문제다. 흑인 의원들의 연설을 귀담아 들어보면 그들의 말이 맞다. 나는 속으로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믿어도 공화당 소속이기 때문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흑인 의원들의 연설은 예를 들어, 흑인들이 악순환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도 초점이 맞춰져 있다. 흑인 지역에 사는 흑인들은 저질의 교육을 받게 되고 가난한 흑인들 속에 살면서 가정 형편상, 또는 부모들의 무관심으로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고 결국엔 주류사회에서 점점 뒤처져 흑인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악순환을 겪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모두 무상이다. 그 비용은 주로 지방 부동산 세금으로 충당한다. 이상하게도 백인 부자들은 자녀가 적은 반면 가난한 부모들은 비교적 자녀가 많다. 때문에 비싼 집이 몰려 있는 부자 학군은 부동산 세금 납부액이 많은 데 비해 아이들 수가 적어 재정이 넘친다.

그러니 그런 동네 학교들은 넓고 깨끗하고, 책상마다 컴퓨터는 말할 것도 없고 값비싼 최신 시설을 갖춘 일류 학교가 된다. 교사들이 너도 나도 가고 싶어해 우수한 교사들만 선택되기 때문에 자연 일류대학 진학률도 높다. 반면 가난한 흑인 동네 학교의 경우, 세수가 적다 보니 운영 자금이 항상 모자라 주 정부, 연방 정부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형편이다.

당연히 시설이 미비한데다 일류 교사들이 부임을 꺼리기 때문에 학생들은 성적이 뒤떨어지게 되고 대학 진학률도 아주 낮다. 그래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1970년대에는 강제로 흑인 학생들을 버스에 태워 백인 학교에 보내는 프로그램도 채택됐었지만 실패했다.

한번은 중ㆍ고등학교 교사들만 500 명이 넘게 참석한 만찬에 연사로 초청받았다. 공화당 의원들은 누구나 교사들과의 모임을 피한다. 나도 피하려 했으나 할 수 없이 무거운 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바로 옆에서 이웃 지역구 민주당 의원이 나를 미소로 맞아 주었다.

그의 옆 헤드테이블에 앉아 나도 웃으며 장내를 살펴보니 내게 친밀한 미소를 보내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저녁으로 나온 스테이크가 너무 질겨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한번 준비해온 연설 내용을 훑어봤다. 식사가 끝나자 회장이 일어나서 몇 마디 인사말과 함께 우리 둘을 차례로 소개했다.

예상대로 민주당 의원이 일어나서 손을 흔들 때는 열렬한 박수갈채가 나왔다. 그날 토론 제목은 `부자들의 자녀들만 다닐 수 있는 사립학교가 왜 필요한가' 였다.

참석자들은 미국은 중ㆍ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인데 가난한 흑인들이 다닐 수 없는 사립학교에 자녀들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미국 정부의 공교육제도를 거부하는 행위라며 "공화당 의원들은 이것을 어찌 모르냐"고 나를 쳐다보며 공격을 퍼부었다.

이들은 또 전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이민자들이 낯선 미국 땅에 이주해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미국의 우수한 교육 시스템 때문이라는 사실을 공화당은 모르는 것 같다고 힐난했다.

김 의원도 한국인 이민 1세로서 한국에서 오는 수많은 이민자들이 한결같이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선호해서 아이들을 데려오고 심지어는 조기유학까지 시키고 있는데 어째서 이처럼 훌륭한 미국의 중ㆍ고등학교 교육 시스템을 거부하는지 직접 들어보자는 게 참석자들의 요청이었다. 정면 공격이었다. 박수 속에 내가 연단에 나서서 마이크를 잡으니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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