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올 때 우산을 빼앗는 버릇을 못 고치고 있다"(은행들의 인색한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정부 당국자의 발언)
"비가 온다고 내 우산 벗어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은행영업이 자선은 아니다"(정부의 대출확대압박에 대한 은행관계자의 언급)
은행들도 진퇴양난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연일 수위를 높여가는 정부의 중소기업 대출확대요구에 은행들로선 곤혹스런 표정이다. 정부에 대해 대놓고 반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정부요구 대로 대출을 '퍼 줄수는'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기엔 당장 자신들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들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급락하고, 순이익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실제 국내 18개 은행의 올해 9월 말 BIS 비율(이하 바젤Ⅱ기준)은 10.79%로 3개월전에 비해 0.57%포인트 하락했고, 순이익도 8조4,000억원에 그쳐 지난해 동기대비 36.2%나 감소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향후 최소 1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기침체로, 향후 연체율과 부실채권은 계속 높아질 수 밖에 없는 형편. 특히 부동산 경기 침체로 가계대출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마저 부실화될 경우 은행도 감당하지 못 할 지경에 이를 지도 모른다.
실제 은행들은 제 살길을 찾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수년간 외형확대 경쟁을 하면서 빌려온 외화차입금(6월말 약50조원)의 상환압박이 시작되고 있고, 자금시장 경색으로 후순위채권 발행 등을 통한 자기자본 확충도 힘겹다. 파생상품과 관련한 드러나지 않는 부실 규모도 걱정거리다.
그렇다고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대해 'NO'라고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당장 기업을 살리기 위해 대출을 완화하라는 정부 당국의 의지에 최소한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정부가 원화 유동성 비율 기준을 낮춰주고, 바젤Ⅱ기준 적용 시점을 1년간 유예해 준 만큼 '공'은 은행으로 넘어온 상태다. 특히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를 야기한 키코(KIKO)사태를 유발한 장본인이라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도 기업 대출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정부 얘기가 틀린 것만도 아니다. 경기가 좋을 때엔 돈을 쓰라고 사정까지 하다가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는 은행들의 행태엔 분명 문제가 있다. 환란 이후 10년을 거치며 은행들의 각종 지표는 크게 개선됐지만, 정작 근시안적이고 담보만 선호하는 영업행태는 달라진게 없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는다.
한 은행 관계자는 "결국은 옥석을 가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정부의 무리한 대출확대요구는 분명 부당하지만 은행들도 한꺼번에 신규대출을 중단하는 식의 영업행태에 대해선 솔직히 자성해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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