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은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환란 당시 바닥을 친 이래 신용등급은 한 계단씩이나마 천천히 밟아 올라왔다.
이 점에서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하나인 피치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Negative)’으로 하향조정한 것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록 등급 자체를 강등 시킨 것은 아니지만, 등급전망을 낮췄다는 것은 언제라도 등급을 내릴 수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이후 한국의 공식 신인도에 대해 첫 부정적 조치가 취해졌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국내 금융의 안정성을 걸고 넘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피치의 결정은 앞으로 다가올 상황에 대한 우울한 전주곡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등급전망 왜 낮췄나
피치는 선진국 경기가 침체국면으로 들어서면서 신흥 국가들도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에 평가를 받은 17개국 가운데 불가리아, 카자흐스탄, 헝가리, 루마니아 등 4개국은 아예 신용등급이 내려갔고 한국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멕시코, 남아공, 칠레, 헝가리, 러시아 등 7개국은 등급 전망이 하향 조정됐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신흥시장으로서의 위험 외에도 은행권의 자산건전성 악화를 문제 삼았다.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현재로선 충분하나 은행의 단기자금 수요가 많아 국제 유동성이 더 악화될 경우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
이에 대해 정부는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는 모습이었다. 재정부 관계자는 “아시아ㆍ태평양 신용등급 책임자 제임스 매코맥도 금융위기 이후 한국 정부가 취한 외화유동성 공급이나 은행 대외채무 지급보증, 거시경제 부양조치 등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며 “세계경제의 흐름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지, 유독 한국 경제가 안 좋아서 낮아진 것은 아니다”고 분석했다.
■ 소극 대응시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물론 신용등급 전망이 하향 조정됐다고 당장 불이익을 받거나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년 4월 연례 회의까지 부정적 요소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가 신용등급이 실제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다른 국제신용평가사들도 한국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칫 연쇄적인 신용등급 전망 하향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점이 문제다.
무디스의 경우 지난달 17일 국가신용등급을 ‘A2’(안정적)로 유지했으며, S&P도 같은 날 신용등급을 ‘A’(안정적)를 부여했다. 그러나 무디스는 이달 말 우리나라 은행에 대한 재평가에 돌입할 예정이고, S&P 역시 한국 신용등급에 대해 하향조정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 불씨는 살아 있는 셈이다.
이선엽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외채 등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이 큰 것이 전망하향의 요소로 작용했다”며 “정부의 실물경기 침체 대응과 함께 전세계 경기침체가 얼마나 빨리 회복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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