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동성을 지원하고 있다고요? 그게 어느 나라 이야기죠? 1원짜리 하나 구경 못해 봤습니다. 신문과 방송을 보면 정부가 뭐든지 금방 지원해 줄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다 웃기는 소리입니다. 실제 은행에 가서 확인해 보세요. 정부의 '언론 플레이'도 이젠 지겹습니다. 신문이나 방송 안 본 지도 오래됐어요."
파생금융 상품인 키코(KIKO) 피해를 본 중소기업 A사 대표에게 정부의 중소기업 자금지원 상황을 묻자, 비아냥 섞인 냉소와 함께 정부의 유동성 지원 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가 키코 피해 중소기업들을 위해 내놓은 유동성 지원 정책이 겉돌고 있다. 시중 은행들이 재무 건전성 악화를 우려해 중소기업 대상의 자금 지원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탓이다.
정부는 지난 달 초 키코 피해 업체를 포함한 중소기업 구제 방안으로, 각 사의 경영상태를 AㆍBㆍCㆍD 4가지 단계로 나눠 유동성을 지원하는 '신속처리절차'(fast track) 프로그램을 가동키로 했다. 이에 따라 4조3,000억원의 자금과 4조원의 보증 지원에 나섰지만, 집행률은 기대치를 한참 밑돌고 있다.
정부는 또 키코 피해 중소 기업들을 위해 은행협의회 심사를 거쳐 만기 연장 등을 시행키로 했으나, 제 코가 석 자인 은행들이 소극적이다 보니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키코 피해 중소기업들의 유동성 체감 온도는 여전히 '영하권'에 머물러 있다.
키로 손실로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C사 대표는 "키코 손실에 따른 미정산 연체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주거래 은행에선 만기 연장은 커녕 부모의 부동산을 추가 담보로 요청하며 월 500만원씩 적금에 가입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며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조건을 내걸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유동성 지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대다수 키코 피해 관련 중소기업들은 정부의 유동성 지원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키코 피해 중소기업 75개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94.7%가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한 정부의 대응이 신속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정책 대응시기가 적절했다'고 답한 기업은 5.3%에 불과했다.
또한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에 대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보는 기업은 64.0%, '그저 그렇다'는 33.3%로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업체는 2.7%에 그쳤다. 금융안정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복수응답)는 '은행의 소극적인 행동'(53.4%)을 1순위로 꼽았고, '정책효과 발휘까지 장시간 소요'(49.3%), '정부정책 신뢰 부족'(43.8%), '글로벌 경기 침체'(21.9%), '지원 자금의 규모 부족'(19.2) 등이 뒤를 이었다.
금융감독원이 이달 초부터 뒤늦게 시중은행들을 상대로 중소기업 대출 만기 연장과 신규 지원 실태에 대한 현장 점검에 나섰지만, 여전히 상당수 키코 피해 중소 기업들은 운영자금 압박을 호소하고 있다.
업계에선 글로벌 경기 침체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국내 중소기업들의 유동성 확보를 위한 중ㆍ장기적인 지원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 이창민 주임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은행들의 신용평가 역량을 강화, 담보 위주의 대출에서 벗어나 신용대출 비중을 높여갈 필요가 있다"며 "중소기업들의 자금 조달 경로를 은행 대출 뿐만 아니라 주식이나 채권시장 등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정책당국과 금융기관, 기업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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