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후한(後漢)을 창시한 광무제 유수(劉秀)의 이야기이다. 천하를 노리고 군사를 일으킨 유수에게 등우(鄧禹)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유수는 "나를 섬겨 벼슬을 하고 싶어서 오셨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등우는 "아닙니다. 당신이 천하를 얻게 되는 날 저도 견마의 공이라도 세워 이름을 청사에 남기고 싶을 따름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즉 자신은 광무제가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에 기여하여 역사에 이름을 남기면 족할 뿐 결코 벼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직접적으로 말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이를 몸소 실천한 사람이 바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개국한 후 모든 벼슬에서 물러나서 초야에 묻혀 살았던 장양이었다.
집권과정엔 온갖 약속 하지만
하지만 역사에서 이런 인물들을 찾기 어려운 것을 보면 목숨을 걸고 공을 세운 뒤에 그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물러난다는 것은 결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한편 천하를 얻은 군주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공신들을 어떻게 대우해 주는가 하는 문제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군주는 천하를 얻는 과정에서 헌신적인 노력을 해 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성공하면 꼭 보답하겠다고 약속하게 된다. 공신들 또한 이런 보답을 기대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바쳐 도움을 주게 된다.
문제는 천하를 얻는 과정에서 하게 되는 이런 약속들을 모두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천하를 놓고 다투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상황이므로 천하를 노리는 사람들은 정말 자신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 잘 계산해 보지 않고 약속을 해 주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주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의원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유색인종이라는 엄청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개인적인 쾌거이자 미국 국민들의 쾌거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얻어서 당선된 오바마 당선자로서는 빚을 갚아야 할 공신들이 특히 많은 상황이리라 짐작된다. 또한 8년 간 정권을 잡지 못했던 민주당으로서는 이 승리의 날을 기다렸던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의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공신들에게 한 자리씩 나누어 주고 지지층의 세금은 내리고 혜택을 올려주다 보면 제대로 일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연 오바마 당선자가 이런 공신들과 지지계층의 요구들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 아닌가 싶다.
역사에서 성공적으로 왕조를 연 군주들의 공통점은 대업을 이룬 후에 자신을 도왔던 공신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더 나아가 이들을 숙청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일등 공신인 한신을 약속대로 제후국의 왕으로 봉해 주기는커녕 처형하였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알려졌던 후한의 창시자 광무제 유수 또한 어려움에 빠졌을 때 유양이라는 사람의 조카딸과 결혼하여 도움을 받았는데, 막상 천하를 차지한 이후에는 이 유양을 처형하고 왕비도 쫓아냈다.
공신들은 대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었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므로 일을 해 나감에 있어서 가장 호홉이 잘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일단 한 나라를 통치하는 위치에 이르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일정 지지층이나 공신들만을 위한 통치자가 아니고 자신을 반대했던 사람까지 모두 아우르는 전 국가의 통치자가 되는 것이므로 일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해서는 안 된다.
집권 후엔 이를 어길 줄 알아야
현대의 대통령들도 당선이 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많은 약속을 할 것이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라면 반드시 은혜에 보답하고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에게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올바른 대통령이라면 약속은 저버리고 은혜는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도 대통령이지만, 우리 한국의 대통령도 한 지지층을 대변하고 일부 집단의 도움을 받았던 후보자 시절은 잊어버리고 모든 국민을 대변하는 대통령으로서 거듭나기를 바란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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