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염과 합병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김모(66ㆍ전남 진도)씨. 그 동안 복지관을 통해 무료로 재가(在家) 서비스를 받아왔다. 그러나 올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면서 난감해졌다. 2등급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요양보험으로 방문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본인부담금 10여만원을 새로 내게 된 것.
소득이라고는 월 20여만원의 장애인연금이 전부인 김씨는 "옛날처럼 그냥 와서 돌봐주면 안되냐"고 사정했지만, 요양보험 시행으로 예산지원이 줄어든 복지관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정부가 복지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며 복지에 시장원리를 속속 도입하고 있지만, 역기능이 속출하고 있다. 민간기업 참여로 경쟁을 촉진하고, 일정부분 유료화하는 대신 소비자 선택권을 높이겠다는 것이 복지 시장화의 취지다.
하지만, 돈 없는 복지 수요자들은 사각지대로 밀려나고 있다. 이 때문에 적으나마 복지혜택을 받았던 사람들이 본인부담금을 낼 수 없어 이마저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대표적인 예다. 요양보험은 65세 이상 노인들이 보험료를 납부하고, 질병 정도에 따라 1~3등급의 중증판정을 받으면 요양시설이나 재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1~3등급 판정을 받아도 본인부담금을 낼 수 없는 저소득층에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본인부담 무료)와 의료급여수급자(50% 지원)만 본인부담금을 지원할 뿐 대부분 차상위계층은 모두 본인부담을 지우고 있다.
9월말 현재 1~3등급 판정을 받은 노인 30여만 명 가운데 기초수급자나 의료급여수급자가 아닌 일반 대상자는 66.4%. 이중 상당수가 본인 부담금을 내기 어려운 저소득층이다.
서울의 한 노인복지관 관계자는 "무료로 받던 복지를 돈 내고 받아야 하기 때문에 매일 요양사가 방문해야 할 저소득 치매 노인들이 1주일에 한번만 서비스를 신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기초수급자 등의 본인부담 지원을 지자체가 떠안고 있어 지자체들이 기존 복지예산을 줄이고 있다.
이 결과 1~3등급이지만 형편이 안돼 서비스를 못 받거나, 등급 외 판정을 받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 노인들에 대한 복지는 줄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요양보험 시행으로 단기노인보호시설 30개소에 대한 하반기 예산을 70% 삭감했고, 58개 주야간 노인보호시설 예산은 45~55% 줄였다.
장안종합사회복지관의 안병일 사회복지사는 "이동목욕서비스만 해도 이전에는 사회복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무료로 해줬는데, 지금은 3등급 안에 못 들면 받들 수 없다"며 "설령 3등급 안에 들어도 월 1만2,000원을 내야 하는데, 이들에게 작은 돈이 아니다"고 말했다.
신림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도 "지금까지 일반인 대상으로 돈 받고 씻겨주는 것이 복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그러나 지금은 민간 업체들이 가세해 노인들 상대로 쟁탈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민간업체들을 참여시켜 복지시장을 형성하고 경쟁을 촉진하겠다며 추진중인 바우처(복지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증서)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단적인 예가 독서지도를 통해 저소득층 자녀들의 인지능력을 높이겠다며 도입한 '아동인지능력서비스' 사업. 학부모들은 월 5,000~2만3,000원의 본인부담을 하고 8개 학습지 업체 중 한 곳을 선택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25만명이 서비스를 받을 만큼 인기다. 그러나 당초 독서지도 취지와 달리 학습지를 함께 제공하고 가르치는 대형 학습지 업체 W사가 시장의 40%를 점하며 독과점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 모 구청에는 일부 업체가 추가로 돈을 내고 잡지를 구독하라고 권유한다는 학부모 항의도 접수됐다. 계명대 사회복지학과 지은구 교수는 "공공부문이 취약하고 별 규제도 없는 상태에서 복지를 시장화하면,
특정 기업이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다른 서비스를 추가 구매하도록 유도하게 되고, 이 경우 더 이상 복지라는 개념을 붙일 수 없다"며 "특히 곧 시행될 보육 바우처사업은 추가부담을 하더라도 원어민 교사가 있는 보육시설로 몰릴 것이 뻔하고, 이 경우 저소득층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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