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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수자원公 여성 공사감독 김형숙·남향진·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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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수자원公 여성 공사감독 김형숙·남향진·김성희

입력
2008.11.1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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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오살(五殺)나게 춥던 어느 겨울날,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광역상수도관이 터졌다. 꼬질꼬질 작업복에 열심히 감독을 하는데, 부티 나는 모녀의 대화가 귓전을 때린다. "엄마, 저 아줌마 뭐 하는 거야."(어린 딸) "사고 나서 공사하는 거야,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엄마) 황당함에 얼어붙은 오금이 굳는다. '헉, 남 보란 듯 공부해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입사했건만….'

#편견: "아가씨, 커피 한잔 줘." 현장 사무실에 득달같이 들어선 시공사 남자직원이 다짜고짜 반말이다. "근데 감독은 어디 갔어?" 갈수록 가관에 열이 확 뻗는다. 묵직한 도면을 꺼내 책상에 탁 놓는다. "저를 찾으셨군요. 참, 커피 한잔 드릴까요." 놀라움에 사내의 낯이 굳는다. "알바(아르바이트)생인 줄 알았는데…."

여성 공사감독은 사뭇 속상하다. 속칭 '노가다'(일본어 'どかたㆍ도까따'가 어원)판에 등장한 여성은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경우나 허드렛일이나 하는 아르바이트라 여기는 게 지긋지긋한 사회 통념. 오죽하면 막벌이를 인생 막장이라고 부를까. 살가운 말보다 험한 욕설과 우락부락한 몸이 앞서고, 성(性)에 대한 각종 금기(禁忌)가 휘감는 공간이니 웬만한 여성 아니면 버텨내기 힘들기도 하다.

오해와 편견은 시나브로 깨지기 마련. 한국수자원공사(K-water)의 여성 공사감독 3인을 만났다. 김형숙(34ㆍ수도권수도건설단) 과장, 남향진(28ㆍ성남권관리단) 김성희(27ㆍ수도권운용처) 대리다. 현재 공사의 토목직급 공사감독은 697명, 이중 29명(약 4.2%)이 여성이다.

"여자가 어딜 감히 터널 안에…."

몇 년 전만 해도 여성은 터널 공사장 인근에 얼씬 못했다. 붕괴위험이 있는 현장에 음기가 스며들면 "재수 옴 붙는다"는 게 이유. 괜히 나섰다간 흙 세례에, 집어 던진 삽에 맞기 십상이다. 김 과장은 "예전엔 (터널 여성 공사감독은) 상상도 못했는데, 2004년 이후 여성 감독이 한둘 성과를 내면서 터부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강 밑을 가로지르는 터널 공사감독을 성공리에 마쳤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연약하다는 선입견때문인지 여성 감독에 대한 무시도 다반사였다. 오죽하면 "선배들이 기선제압 및 현장용어 활용법을 업무 인계의 첫머리에 둔다"(남 대리)고 했을까. 현장 군기 잡기용 매뉴얼도 있다. "일단 검측자(검사용 줄자)를 쓱 늘인 뒤 바로 던진다. '데나우시'(불합격의 현장용어)를 호기롭게 외치고 박찬다.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다."

살아 남기 위해선 강해질 수밖에 없다. 시청 등 해당 관청과 업무협조를 할 때는 책상을 뒤엎을 정도로 단호해지기도 한다. '직무유기' 등 험악한 말을 앞세우며 안면몰수도 감행한다. "공과 사는 확실히 구별하기 위해"(남 대리), "적당히 넘어갔다간 수천만원, 수억원의 사업비를 까먹을 수 있어서"(김 과장), "결국 성과가 좋아져 자재업체나 시공업체에 득이 되기 때문"(김 대리)이다.

여성 특유의 깐깐함이 발휘되는 것이다. 그래서 셋은 "아쉬운 소리는 못해도 싫은 소리는 잘 한다"고 웃었다. 물론 뜻한 바를 이루면 뒤처리는 애교로 깔끔히 마무리한다고 했다. 여성에 대한 배려가 확산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관청이든, 시공 업체든) 경청하는 분위기라고도 했다.

여성인지라 경제관념도 남다르다. 남 대리는 "철근이 산더미처럼 쌓인 현장에서 일일이 하나씩 철근을 새고 있으면 업체 직원이나 인부들이 혀를 내두른다"고 했다. "고작 하나 빠진 것 가지고 왜 그러냐"는 볼멘소리도 용납하지 않을 뿐더러, 결국엔 업체에도 득이 된다.

'혼자 크는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기

김 과장의 딸(10) 별명은 '혼자 크는 아이'다. 그는 입사 이후 12년간 회식을 빠져본 적이 없다. 소주 3잔이던 주량은 3병으로 늘었다. 남들(특히 남성)과 다르지않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한시도 일을 잊지 않는다. 정보공유 및 경험습득, 경쟁유지를 위해선 어울림과 책임감은 필수다. 김 대리는 "하이힐을 신은 채 4㎏이 넘는 도면더미를 들고 고층을 오르내리기도 한다"고 했다.

시행업체의 꼼수도 넘어가지 않는다. 남 대리는 "가끔 대충 넘어가려고 굳이 쉬는 토요일에 검측을 해달라는 현장이 있는데, 15개월 된 아기를 등에 업고 감독을 나설 때도 있다"고 했다. 꼭두새벽 단수나 수도관 파열 등의 사고로 비상이 걸릴 때도 마찬가지. 긴급복구 시엔 이삼일을 꼬박 현장에서 새기도 한다. 몰골이 온전할 리 없으니 물정 모르는 행인들에겐 에누리없이 딱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두렵고 부족한 것도 있다. 김 과장은 "늘 안전모에 작업복, 각반까지 중무장을 하고 현장에 나서지만 10m 깊이를 사다리로 내려가거나 허공에 가느다랗게 걸린 H빔을 걸어갈 때는 솔직히 겁이 난다"고 했다. 남성보다 공간 지각력이 떨어져 도면 해독을 위해 더 공을 들인다고도 귀띔했다. 체력도 달리니 주말에 시체놀이하기 일쑤다.

그래도 악착같이 일에 매달리는 건 꼭 편견 깨기나 단점 메우기 만은 아니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더 크다. "우리가 토목 감독을 해주지 않으면 도로나 아파트 등이 설 수 없어 살 수가 없고"(남 대리), "깨끗한 물을 선사하는 일"(김 대리)이자 "새롭게 물길이 열리고 용수가 공급되는 놀라운 직업"(김 과장)이니까.

혹 거리에서, 혹 현장에서 그들을 마주치거든 오해나 편견 따위 던져두고 미소 짓자. 그리고 한마디. "공사감독이죠. 일하는 그대가 아름답습니다."

▦여성 공사감독 프로파일

-정의: 시공업체 공사감독, 해당 관청과 협의, 단수 및 사고 등 긴급복구

-업무: 측량, 각종 자재 검측, 레미콘 도착시간 준수 및 관 용접 점검, 민원 면담

-특기: 하이힐 신고 무거운 물건 나르기

-애로사항: 말술은 기본, 짐짓 욕설도 장착

-공포: 급경사, 깊이, 허공에 걸린 H빔, 난해한 도면

-자부심: 수학과 과학의 하모니로 수십 대 1의 경쟁률 뚫었다

-아쉬움: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쟁, 평가 받고 싶다.

-부탁: 노가다라는 편견은 이제 그만

-좌우명: 아쉬운 소리는 못해도 싫은 소리는 잘 한다

-한마디: 토목은 넓다, 여성들이여 도전하라

-궁금증: 왜 명절마다 수도관이 터지나? 귀향 등으로 물 사용량 달라져 압력 차이 발생

고양=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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