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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32> 대 국민계약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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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32> 대 국민계약 II

입력
2008.11.10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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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허슬러라는 성인잡지가 있다. 이 잡지에 비하면 플레이보이 잡지는 오히려 점잖게 보일 정도다. 이 잡지는 너무도 노골적인 남녀 나체사진이 게재되는 등 지나친 노출로 미국의 청소년 교육과 도덕 의식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여러 번 교회와 보수 단체들이 법원에 잡지사의 폐쇄를 요구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헌법에 보장된 출판의 자유를 이유로 소송은 기각됐었다. 이에 분노한 어느 교회의 교인이 잡지 발행인인 래리 플린트 (Larry Flynt) 를 총으로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 결국 플린트는 기적적으로 생명은 건졌지만 반신불구에 언어장애까지 겹친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이 무렵 언론의 톱뉴스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이었다. 하루는 공화당 의원총회에 갔더니 괴상한 소문이 퍼진 탓에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소문은 허슬러 잡지 발행인인 래리 플린트가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을 집중 공격하는 공화당 의회 지도자들의 도덕적 우월성을 검증하겠다고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루머에 따르면 플린트는 공화당 의회 지도자들의 위선에 도전하기 위해 그들의 섹스 비리에 대해 폭로하는 사람에게 100만 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결국 이 루머가 사실로 확인되면서 우리들은 다시 모여 특정 의원들만을 겨냥한 이런 마녀사냥이 헌법에 저촉되지 않는지 알아보았지만 헌법에 보장된 언론, 출판, 표현의 자유때문에 위헌이 될 수 없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더 이상 이 문제에 맞서기 보다는 일단 두고 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이 일이 깅리치 하원의장의 정치적 몰락을 가져올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몇 주 만에 깅리치의 혼외정사 섹스 스캔들이 터져 나왔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이었던 조지아주를 몽땅 공화당으로 바꿔놓은 공화당의 영웅, 바로 공화당이 40년 만에 어렵게 만들어낸 하원의장, 항상 도덕성을 앞세워온 공화당의 리더, 클린턴의 부도덕을 가장 앞장서서 비판하며 힐난했던 바로 그 깅리치 의장이 거의 30년 연하인 상임위 미녀 직원과 불륜의 관계를 맺어 왔다는 사실이 언론에 폭로됐다.

이에 분노한 깅리치의 부인은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하이에나 같이 몰려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깅리치를 혹독하게 비난했다. 공화당 소속 의원들 역시 기가 막혀 허탈한 마음이면서도 이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를 폭로한 사람이 누구이고 100만 달러의 보상금을 탄 사람은 누구인지는 사생활의 비밀보호 원칙에 따라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결국 만신창이가 된 깅리치는 그 다음 총선 때 공화당이 5석을 잃은 것을 표면적 이유로 해서 하원의장직은 물론 의원직마저 사퇴했다. 깅리치는 그 뒤 결국 스캔들의 여인과 결혼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몄다. 이로써 공화당 의원들은 위대한 지도자를 잃고 방황할 수 밖에 없었다.

섹스 스캔들은 이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와 친했던 상임위원회 위원장도 5년 전에 있었던 혼외정사가 폭로되면서 다행히도 부인에게 '싹싹' 빌어 용서를 받았지만 대신 의원직을 사퇴해야 했다. 그 외에 헨리 하이드 법사위원장까지도 엉뚱한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는 당시 80살이었는데 40년 전 지역구에 있는 미용실 직원과의 성관계가 폭로됐던 것이다. '때는 이때다'하고 언론들이 카메라를 들고 이 여자를 찾아내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그녀는 이미 70살이 넘었고 보청기마저 고장이 나서 잘 듣지 못했기 때문에 같은 질문을 반복해야 하는 안타까운 장면이 펼쳐졌다.

이에 분개한 시청자들은 '수치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방송국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쳐 결국 이 인터뷰 방송은 바로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들이 전해졌다. 이쯤에서 일이 매듭지어졌으면 좋았을 것을 하이드 법사위원장이 흥분해 "40년 전 철이 없었을 때 일을 들쳐낸다는 것은 부도덕한 언론행위"라고 한마디 한 것이 설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신문들이 그 이튿날 40년 전이면 그의 나이 40인데, 40살에도 철이 안 들었으면 도대체 언제 철이 드는 것이냐고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의회에 철부지들이 많아 국민의 의회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 것'이라는 공격이 나왔고 결국 하이드는 위원장직 사표를 제출했다.

새 하원의장을 뽑는 과정에서는 저마다 섹스 스캔들 때문에 서로 주저하는 바람에 기현상이 벌어졌다. 의회 서열이 아주 낮고,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일리노이주의 전직 교사 출신으로 철저한 가정형 '뚱보'인 데니스 헤스터드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의장으로 추천돼 본회의에서 하원의장에 당선됐다.

여성 스캔들이 전혀 없는 조용한 일꾼으로 알려진 헤스터드 의장은 2006년 총선에서 공화당이 30석을 잃고 도로 야당으로 전락하는 바람에 의장직을 상실했고, 이에 책임감을 느끼고 의원직마저 사퇴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클린턴 대통령의 도덕성을 비난했다가 오히려 공화당이 풍비박산이 난 셈이다. 정치 전문가들에 따르면 앞으로 40년 간은 공화당이 도로 야당생활을 해야 할 것이란 전망이다. 헤스터드 의장이 재임한 8년 동안 미국민의 90%가 하원의장의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반면 깅리치 의장은 재임한 4년 동안 90% 이상의 국민이 그를 알만큼 유명했다. 한때 대통령 출마에까지 이름을 올렸던 미국 정치계의 슈퍼스타를 하루 아침에 잃은 공화당은 결국 다시 야당으로 전락했고, 더 이상 그의 감동적인 연설과 명철한 판단에 의지할 수 없게 됐다.

그 누가 역사를 빛낸 많은 영웅들이 여자 때문에 망하고 여자 때문에 성공한다고 했던가. 클린턴 대통령은 그 많은 여자 관계에도 불구하고 부인 힐러리가 나서 남편의 편을 들어 살려냈고 반면 깅리치는 그 부인의 공격으로 무너져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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