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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집주인에게서 걸려 온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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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집주인에게서 걸려 온 전화

입력
2008.11.1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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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느 거품 지역 아파트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지인을 만났더니 10년 새 주인이 대 여섯 번 바뀌었다 한다. 세입자가 주인을 갈아치우고 있는 셈이라며 허허롭게 웃는다.

그 집의 진짜 주인은 진짜 누구일까. 삶의 갈피갈피에서 겪어냈던 사건들이 그 동네와 밀착되어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아이들이 자라면서 새 동네친구를 열심히 만들어가는 동안 어른들도 나름대로 그곳을 추억할 재료를 만들고 있지 않았겠는가? 그 식구들이 그곳을 언젠가 떠난다 해도 누구에게는 유년 시절로, 또 누구에게는 중년의 위태로운 문턱을 넘어간 시절로 간직되면서 언젠가 다시 한번은 찾아오고 싶어할 사람은 누구인가? 얼마에 사서 양도 차익을 얼마 남겨 팔았고 세테크를 하여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는 기록과 기억을 남겨줄 사람들은 어떤 의미의 주인의식을 갖는 것일까?

자꾸만 움직여야 더 좋고 비싼 집을 갖게 됨을 많은 사람들이 산 경험으로 배우고 있다. 좀 진득하게 삶의 공간을 꾸리면서 생애사를 만들어 가 보십사고 그 분들께 말하면 세상을 모르는 소리라 할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바로 집주인께 전화가 걸려왔다. 10년 세 들어 사는 동안 만나 뵌 것은 계약과 재계약 관련해서 딱 두 번이었다. 전화 통화 역시 석유 중앙난방을 개별 도시가스난방으로 교체하는 일 정도에서 서너 번 이루어졌다. 아니다. 그 사이 딱 한번 월세 날짜를 지키지 못했을 때 한 번 더 있었구나.

사안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댁의 아드님이 장가를 가신다는 거였다. 축하와 더불어 오랜 기간 잘 지내게 해주신 고마움도 함께 표했다. 그러다가 이 아파트가 아드님 명의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런데도 내 입에서는 "그럼'우리집'으로 이사를 오시게 되나요"라는 말이 그냥 나온다. 다행히 직장 관계상 지방에서 얻게 될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요샌 지역도 새 아파트 전세가 꽤 비싸서 월세를 끼고 있는 부분전세를 온전한 전세로 바꾸고 싶어 하시는 것이었다.

짧은 통화 시간 동안 여러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사그라진다. 10년 요지부동이었으면 타의로라도 움직여야 되지 않겠는가. 아니지, 어떻게 해서든 전세금을 만들어 드리고 그냥 있는 게 여러 모로 좋지 않은가. 판단하기 어려웠다. 어르신께서 제시하신 금액이 시세보다 웃도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집 형편에는 급작스러운 큰 부담이어서 시간을 갖기로 하고 통화는 끝났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오래 눌러 있게 될 거라는 예상을 하지 못해서 도배도 안하고 들어온 집. 살다 보니 짐 때문에, 게다가 또 언제까지 살지 몰라서(언제 비워달라고 하실지 몰라서) 해가 가고 또 바뀌는 동안 여전히 도배를 못하고 살고 있는 집. 다행히 거실이며 공부방이며 베란다에서 열심히 공기를 맑게 만들어주는 식물 친구들이 있어서 낡은 벽지 냄새를 조금은 막아주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니 단독주택에서 살다가 아파트 8층으로 이사 왔을 때의 현기증이 생각난다. 그래도 재미있었던 일이 더 많았다. 자장면 시켜놓고 후배들과 훌라 판도 가끔 벌였는데 그 친구들은 지금 잘들 살고 있는지. 가끔 방문하는 지인들과 소박한 밥상 마주했던 기억들이 새롭고, 식탁을 책상 삼아 세미나 하던 나날들이 그리워졌다.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그 동안 잘 사셨는데 월세 조금 더 올려주고 그냥 그대로 계시라고 하신다. 집값이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텔레비전 뉴스가 흘러나온다. 이번에도 집주인 되어 이사 갈 타이밍은 아닌가 보다.

윤혜린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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