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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기담' 희곡같은 실험적 시집… 이성에서 해방된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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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기담' 희곡같은 실험적 시집… 이성에서 해방된 언어

입력
2008.11.10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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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지음/문학과 지성사 발행ㆍ168쪽ㆍ7,000원/막이 열린다. 무대는 종이, 등장인물은 언어다.

김경주(32ㆍ사진)씨의 두번째 시집 <기담> 은 희곡의 형식을 띄고 있다. 시인들이 통상 수록시들을 1부, 2부, 3부 식으로 배열하는 것과 달리 김씨는 '제1막 인형의 미로' '제2막 인어의 멀미' '제3막 활공하는 구멍' 식으로 자신의 시들을 구획짓는다.

시어들은 뒤틀어지고, 어그러지고, 해체되고, 방황한다. '라미가 는에게 저녁에 손을 잡아주었다 귀머리가 를에게 속삭였다 손에 목을이 달렸다 라미가 을의 생존을 물었고 분홍귀가 욜을 불러냈다'('죽은 나무의 구멍 속에도')와 같이 조사를 혼용하기도 하고, 악보를 그려넣거나('어그야 혹은 파롤'), 글자들을 동그란 원 형태로 배열('다섯 개의 물체주머니를 사용하는 자연시간')하기도 한다.

김씨는 이같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언어를 '이성'의 세계에서 해방시키려 한다. '우리가 여기서 사용하는 무대의 이명(耳鳴)은 배 속의 태동을 간직하고 있는 그 언어에 호흡기를 다시 대주는 일이다'라는 김씨의 글은 이 기이한 시집을 꿰뚫어보게 하는 하나의 힌트다. 로고스적 언어란 신화에 불과한 것으로, 마치 세계가 부조리한 것처럼 언어 역시 불구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그에게 완전한 언어는 인간 세계의 관습에 물들지 않은, 자궁 속에서의 언어밖에 없다.

낯설고 불친절한 시어들은 결코 독자들을 편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들어가보면 김씨가 저지르는 위악적인 말장난에 슬그머니 웃음을 지을 수도 있겠다. '아들 : 엄마! 취미가 뭐에요?/ 엄마 : …음 그건…네가 좋아하는 거란다./ 아들: 엄마 그런 내 취미는 '젠장!'과 '벼락!'이에요./ 엄마: 얘야, 그럼 엄마의 취미는 뭐라고 생각하니?/ 아들: 음...엄마의 취미는 '염병!'하고 '다락'이에요./ 엄마: 염병할 놈 다락으로 썩 꺼져버려/ 아들: 젠장, 또 벼락이군..('다섯 개의 물체주머니를 사용하는 자연시간')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 등단한 김씨는 2006년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를 내면서도 주목받았다. 극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강계숙씨는 이 시집에 대해 "언어의 부조리성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언어 스스로가 완전한 자율체로 거듭나는 지점을 찾으려는 시적 꿈의 소산"이라고 평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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