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숨진 애들한테 그렇게 미안해 하더니 끝내…."
4일 부산 백병원 장례식장. 여고생 3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대덕여고 앞 승합차 사고에 대한 자책감에 시달리다 3일 스스로 목을 매 숨진 운전자 박징한(60)씨의 부인 이가매(55)씨가 하릴없이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이씨는 "사고로 온 몸에 피멍이 들어 집 근처 병원에 입원 중이던 남편이 TV에서 사고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하염없이 울었다"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남편은 오래 전 담석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나를 보고 (죽을까 걱정이 돼) 기절한 일이 있을 정도로 심성이 착하고 여린 사람이었어요. 전 재산을 모두 죽은 아이들을 위해 내놓고 교도소에 갈 각오까지 내비쳤는데…."
이씨가 남편과 이별한 것은 2일 밤. "피곤할 테니 집에 가서 자고 오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남편을 믿고 집으로 향한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씨는 괴로워하는 남편에게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사고였다. 자책하지 마라"고 수 차례 위로했지만 그 무엇도 남편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박씨가 통학용 승합차 운전을 한 것은 2003년부터였다. 평소 워낙 아이들을 좋아해 15년간 운영해온 제과점을 접고 통학운전을 시작한 박씨는 자신의 승합차에 탄 학생들을 마치 친 손녀처럼 돌봤다.
여름에는 차 안에 아이스크림, 시험기간에는 칼로리가 높은 초콜릿 등 과자를 준비해뒀다 건네곤 하던 박씨를 학생들도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랐다. 이씨는 "그렇게 학생들을 좋아했던 이가 사고에 대한 자책감을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는 사고 당시 브레이크 파열로 차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학생들이 많지 않은 왼쪽 절벽쪽으로 차를 몰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박씨는 고장 난 브레이크를 얼마나 밟아댔는지 오른발 엄지발가락이 뭉개져 있었고, 학생들이 많은 쪽을 피해 운전석 방향으로 핸들을 꺾어 승합차 앞부분 왼쪽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이번 사고는 승합차 정기검사를 받은 지 불과 한 달여만에 발생해 검사부실 의혹도 제기됐다. 2003년에 새로 구입한 승합차가 출고 5년을 넘겨 올해부터 1년에 두 번 씩 정기검사를 받았고, 사고 발생 한 달여 전인 9월20일 검사에서도 정비를 거쳐 '합격' 처분을 받았다. 이씨는 "도대체 자동차 검사를 어떻게 했길래…"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사고 후 입원한 아버지 뒷바라지를 위해 며칠 전 서울에서 다니던 회사에 사표까지 내고 집으로 돌아온 박씨의 아들 지훈(30)씨는 "자상하던 아버지가 사고 후 너무 괴로워하셔서 가슴이 아팠는데 설마 이렇게 가실 줄은 몰랐다"며 허망해 했다.
박씨가 다니던 부산 호산나 교회 권성희 권사는 "평소 성실하고 인간적이었던 고인이 '남에게 씻지 못할 피해를 줬다'는 고뇌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운명을 달리 하고 말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박씨는 부인을 따라 지난해 자신도 시신기증을 약속, "시신은 백병원에 보내 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끓은 시신은 기증받지 않는다'는 의학계의 관행에 따라 박씨의 뜻은 이뤄지지 못하게 됐다.
한편 이날 오전 대덕여고에서는 지난달 29일 발생한 사고로 숨진 신모(17) 정모(17) 석모(17)양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유족과 동료학생, 교사들의 오열 속에 치러졌다.
부산=김창배 기자 kimc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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