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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민 자녀들, 두 번 운다/ "한국말 좀 못한다고 장애아 취급…꿈조차 버림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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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민 자녀들, 두 번 운다/ "한국말 좀 못한다고 장애아 취급…꿈조차 버림받아"

입력
2008.11.10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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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인 엄마를 둔 김모(12)군. 초등학교 내내 숙제를 제대로 못하고 준비물도 못 챙겨 담임교사로부터 지적을 받아왔다. 엄마가 한국 말이 서툴러 알림장을 봐도 챙겨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습부진아 판정을 받은 김군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서서히 '왕따'가 됐다. 또래 아이들은 김군에게 갖은 심부름을 시켰고, 짓궂은 장난을 걸기 일쑤였다. 김군은 점점 더 말수가 줄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올 7월 현재 한국에 온 결혼 이민자 자녀는 5만8,000명. 이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한국 말이 서툴러 겪어야 하는 학습 부진과 따돌림이다. 교과 과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친구와 어울리지도 못하며, 심지어 장애아동 취급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다문화 가정이 가장 많은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이 최근 초ㆍ중학교에 재학중인 다문화가정 학생 7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63%가 "학교 생활 적응이 어렵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가장 큰 이유로 '학교 공부를 따라가기 어렵다'(38.5%)를 꼽았다.

그나마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덜한 편이다. 한국인과 재혼한 엄마를 따라 온 이주 청소년들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2006년 1월 재혼한 엄마를 따라 서울에 온 몽골 출신의 A(17)군. 몽골에서 성적이 최상위권이었고, 2007년 3월 중학교 입학 전까지 다닌 한글학교에서도 머리가 비상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A군은 몽골인이라는 이유로 2개 학교에서 입학을 거절 당한 후 어렵게 들어간 학교에서도 6개월 만에 나오고 말았다. "몽골에서는 말 타고 다니냐?" "몽골 새끼 또 왔다"는 등의 놀림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A군은 몽골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대안 학교인 부산 아시아공동체학교 관계자는 "올 초만 해도 재혼한 엄마를 따라와 이 곳에서 교육을 받는 이주 청소년이 8명뿐이었는데, 반년 만에 22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결혼 이민자 가운데 재혼인 경우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모두 외국인인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몽골 출신의 체첵(17)양. 올 3월 서울의 한 중학교에 3학년으로 입학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따돌림이 시작됐다. 수업시간에 아무도 옆 자리에 앉지 못하게 하고, 점심시간이면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없어 화장실에서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스튜디어스가 꿈이지만, 모르는 공부를 물어볼 친구도 없다.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어 가출도 했다. "처음에는 외국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만하고 싶어요."

다문화 가정 자녀들과 이주 청소년들이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업을 포기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부는 어려워지고, 따돌림은 심해진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게 되면서 자신이 어느 나라에 속해야 하는지 정체성 혼란도 겪게 된다.

서울 정동다문화학교 박평화 교사는 "고등학교부터는 학습장애와 따돌림을 이겨낸 절반 정도만 학교를 다닌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는 300여명 가운데 정규학교에 재학중인 아이들은 40%도 되지 않는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8년 현재 만7~12세 결혼 이민자 자녀는 1만8,691명이지만, 교육과학기술부가 파악하고 있는 결혼 이민자 자녀 초등학생은 1만5,804명이다. 또 중학교에 들어갈 연령 대는 3,672명이지만 실제 취학 청소년은 2,205명, 고등학교는 각각 2,504명과 760명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교과부 통계는 교사들이 직접 조사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결혼 이민자 자녀임을 숨기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중ㆍ고교의 경우 학업 포기자들이 상당수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7월 재혼한 엄마를 따라 한국에 온 몽골 출신의 B(17)군 역시 잠시 중학교에 다니다 포기하고 지금은 붙박이장 제조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B군은 미성년자이지만 한 달에 하루 정도 쉬고 매일같이 일을 나가며 한달 100여 만원을 받고 있다.

"부모님이 한국에 계시기 때문에 몽골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B군은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이 학업을 포기하면 대부분 B군처럼 공장에 다니거나 음식점, 택배회사, 이삿짐센터 같은 곳에서 일을 한다.

아직 대부분의 다문화 가정 자녀들은 어리다. 만6세 미만이 57%, 7~12세가 32%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게 될 10여년 후에는 대를 이은 다문화 가정의 빈곤화가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전체 결혼 이민자 가구 중에서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경우가 52.9%(2005년 기준)에 달하는 상황에서, 2세들조차 정규교육에서 소외된다면 빈곤의 대물림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인하대 사회교육과 김영순 교수는 "물론 성격은 다르지만 미국이나 프랑스 등에서의 소수민족 소요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단순한 관리나 배려 차원이 아니라, 똑같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전제에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강희경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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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일민족 강박관념 버리는 인식전환 필요"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간 한국인 자녀들은 대부분 잘 적응하는데, 결혼 이민자 자녀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한국 사회에 왜 그렇게 적응하기 힘들까.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이선 연구위원은 "첫째, 이민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각이 폐쇄적이고 둘째, 동남아 출신 결혼 이민자들의 교육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책의 첫 단추도 결혼 이민자 주변 한국인들의 인식부터 바꾸고, 한글을 힘들어 하는 이민 여성들의 적극적인 사회화를 돕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이민자 자녀의 부적응 문제의 경우) 상수원에서 생긴 문제를 수도꼭지에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남편과 시댁에 대한 의식교육, 이주 여성들에 대한 한글교육과 사회활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가정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는 얘기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이란주 대표도 "이혼과 저소득 등 가정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학교에서의 노력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오성배 연구위원도 "가장 큰 문제는 국내 평균보다 7, 8배나 높은 이혼율"이라며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한국 남편들에 대한 교육이 가장 중요하고, 불가피하게 이혼할 경우 이주 여성들이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보육료 등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 대해 정부가 별도의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이선 연구위원은 "학교에서 반을 나누거나 방과후 교육, 주말 교육 등을 시키면 '나는 왜 다르게 교육 받지?'라며 스스로 차별적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03년부터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보살펴온 베들레헴 어린이집 권오희 수녀도 "단기적으로는 별도 시설을 통해 정체성 확립과 한글교육 등 적응을 돕는 것이 필요하지만 '간이역' 역할 정도에 그쳐야 한다"며 "일반 어린이집과 정규 학교에서 이들이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수녀는 특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정체성 혼란"이라며 "아이들도 엄마 나라에 대해 공부하고, 부모가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한국인들 스스로 다문화에 개방된 인식을 갖는 것이다. 인하대 사회교육과 김영순 교수는 "단일민족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차이에 관대하지 못한 한국의 문화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며 "교육과 제도, 취업 등 사회정치 모든 분야에서 다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희경기자 kbstar@hk.co.kr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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