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보수주의를 혁신한 로널드 레이건,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한 에이브러햄 링컨, 젊은 프론티어 존 F 케네디….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흑인으로는 처음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언론이 그와 닮은꼴 대통령 찾기에 열을 올리며 거론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다. 뉴스위크는 '오바마 시대'라는 제목 하에 "케네디, 루스벨트, 링컨의 정신을 모두 배워라"고 주문할 정도다.
닮은 꼴 대통령으로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1932년 대공황이란 유례없는 경제적 한파 속에서 그가 대통령에 취임할 때와 지금의 경제적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대공황의 여파로 공화당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주당이 상ㆍ하원을 싹쓸이 한 것도 닮았다. 달리 말하면 루스벨트와 같은 경제 위기 극복의 막중한 과제가 오바마의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뉴스위크는 "루스벨트의 기술과 야망으로 1930년대의 위기가 오히려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며 "루스벨트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타임도 "대공황 시절 노변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루스벨트 대통령의 친화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당선자는 정치적 여정에서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도 자주 비교된다. 집안 내력이야 천양지차지만 40대의 정치 신인으로 변화를 주창하며 돌풍을 일으킨 케네디처럼 정치적 신선함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젊고 패기 있는 이미지, 감성에 호소하는 명연설 등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미국의 주류가 아니란 점도 닮았다. 케네디는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로 미국 최초의 가톨릭 대통령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오바마를 '검은 케네디'로 부른다.
정치 노선으로는 반대편에 서있지만 1980년대 보수주의를 혁신하며 미국을 새롭게 부흥시킨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비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레이건 역시 무능한 정부와 의회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데도 정치 게임에만 몰두하던 워싱턴 정가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뉴욕타임스는 "레이건 전 대통령을 본받아 단기적인 인기 영합적 정책 대신 장기적인 해결책을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닮은 꼴 대통령이 여럿 거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당선자 자신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대통령은 단연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같은 변호사 출신인데다 일리노이주를 정치적 고향으로 삼고 있고 불우한 환경을 극복해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링컨이 '하나의 미국'이란 통합의 정치를 지향했다는 점.
오바마 당선자가 지난해 2월 민주당 경선 출마 장소로, 링컨이 1860년 "내부가 갈라진 집은 서 있지 못한다"는 역사적 연설을 한 스프링필드를 선택한 것은 그가 얼마나 링컨을 흠모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바마 당선자는 4일 밤 대통령 당선 소감 연설에서도 링컨을 거듭 인용하면서 진보와 보수, 흑인과 백인을 넘어서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겠다고 약속했다.
저명한 국제문제 전문가 파리드 자카리아는 5일 워싱턴포스터 기고문을 통해 "현재의 위기는 또 다른 시대를 여는 기회이기도 하다"며 "전통적인 진보, 보수 이념에 매몰되지 말고 혁신이라는 제3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의미심장한 것은 오바마의 닮은 꼴로 거론되는 대통령 모두 경기침체나 전쟁의 위기 속에서 등장해 어려움을 극복한 지도자란 점이다.
이 같은 닮은 꼴 논의 뒤에는 그만큼 미국의 위기가 심각하며 오바마가 그것을 해결하기를 바라는 절실한 심경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에게 요구되는 포용과 통합, 혁신의 리더십에는 좌우 구분을 넘어서 미국의 위기를 극복해 달라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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