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는 고발할 도리조차 없는 죄악이 있다. 여기에는 울음으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슬픔이 있다. 여기에는 우리의 모든 성공을 뒤집어 엎는 실패가 있다. 기름진 땅, 무르익은 과일, 그리고 홍반병(피부염 또는 설사증세)에 걸린 어린아이는 오직 오렌지에서 수익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가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는 패배의 빛이 떠오르고 굶주린 사람들의 눈에는 북받쳐 오르는 분노가 번뜩인다. 사람들의 영혼 속에는 분노의 포도가 가득 차서 가지가 휘도록 무르익어 간다. 수확의 때를 향하여 가지가 휘도록 무르익어 간다."
▦미국 소설가 존 스타인벡이 1930년대 대공황과 모래폭풍으로 농장을 잃은 소작농들이 오클라호마에서 서부로 이동하면서 겪는 참상을 그린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에 나오는 글이다. 캘리포니아의 광활한 농장에는 복숭아 오렌지 포도 등 과일이 풍성하게 열렸지만, 백만 명 이상의 이주민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거나 굶주림에 허덕이는 비극적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배고픈 사람들이 버려진 오렌지를 주울라치면 관리인이 오렌지에 석유를 뿌려 못 먹게 한다. 강가에 내다버린 감자를 건지려 하면 파수꾼이 몰아낸다. 지주들이 과일 값 하락을 막기 위해 억지로 썩히거나 버리기 때문이다. 분노의>
▦주인공 조드네 가족은 한 상자에 5센트 하는 복숭아와 목화 따기 등에 나서야 겨우 하루 먹을 빵과 우유, 고기를 산다. 그나마 일감이 없는 날이 더 많아 배고픔과의 전쟁은 끝이 없다. 지주들은 소요 인력보다 훨씬 많은 인원을 모집해 임금을 떨어뜨리는 잔혹함을 보여준다. 이주민들이 최소한 하루 먹을 수준의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면 지주들은 자경단과 보안관대리를 동원해 무자비하게 탄압하거나 추방하기 일쑤다. 이들에겐 '적색분자' 또는 오클라호마 출신의 인간쓰레기를 뜻하는 '오우키'라는 딱지가 붙여졌다.
▦<분노의 포도> 는 대공황으로 고통 받는 소외계층의 삶을 실감있게 그렸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불황으로 신음하는 극빈층과 사회적 약자들을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 방치하기보다는 '보이는 손'을 내밀어 곤궁을 덜어줘야 한다. 소외계층의 영혼에 분노의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1997년 환란 못지않은 경제위기를 맞아 감산 감원 감봉과 명예퇴직 정리해고가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경제혹한기'를 맞아 소외계층을 향한 따뜻한 손길 내밀기에 힘써야 한다. 분노의>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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