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경남지사는 최연소 도백(道伯)이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해 도의원과 군수를 한 번씩 거친 뒤 곧바로 지사 자리까지 꿰찬 '엘리트형 정치인'이다. 개혁적이고 파격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무리하지는 않는다는 평을 듣는다.
김 지사는 "과거의 관행적인 행정체제와 사고로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며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위해 새로운 개념의 행정모델 도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제10차 람사르 당사국총회'(10월28~11월4일)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김 지사를 만나 '포스트(Post) 람사르' 구상과 남해안시대 프로젝트 등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박상준 부산취재본부장
- 총회 개최국으로서 이번 창원 총회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 가치를 한층 높였을 뿐 아니라 '환경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봅니다.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새로운 국가과제도 이번 총회와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져 경남에서 녹색성장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셈이죠. 무엇보다 그동안 무관심했던 습지와 자연환경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현명한 이용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 큰 소득이었습니다. 앞으로 녹색성장의 환경기반을 구축해 '환경수도 경남' 브랜드를 확고히 해 나가겠습니다."
- 총회에서 채택된 '창원선언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총회에서 모두 32개의 결의문이 채택됐는데, 이 중 '창원선언문'은 우리나라가 초안을 작성하고 전문가회의를 거쳐 최종안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가장 큰 성과물로 볼 수 있습니다. 습지를 천연 물 인프라로 인식하고 기후변화 대응전략과 인간생활 개선에 반영토록 하는 행동중심적인 선언입니다. 많은 논란 끝에 총회 마지막 날 채택된 '논 습지 결의안'은 지속 가능한 농법을 통해 논의 생물다양성을 증진하자는 내용으로 인공습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 총회 유치 직후부터 '포스트 람사르'를 강조해 왔는데 구체적인 구상이 있습니까.
"먼저 람사르 등록습지인 창녕 우포늪 주변 습지를 복원하고 정부 습지정책을 총괄할 '국가습지센터'와 국제교류사업을 담당할 '동아시아 람사르지역센터'를 유치할 계획입니다. 또 총회 개최 노하우를 살려 2011년 유엔사막화방지협약 당사국총회도 유치하려 합니다. 7월 설립한 람사르 환경재단에 10년간 300억원의 기금을 조성, 습지보전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국민들의 큰 기대 속에 중국에서 들여 온 따오기 복원사업도 성공적으로 실현하겠습니다."
- 지난달 전국 최초로 '경남환경선언'을 발표했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모든 정책과 산업구조를 녹색성장에 기초해 새롭게 개편해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2020년까지 녹색성장기반 구축에 2조원을 투입하고 기후변화센터도 설치, 운영할 계획입니다. 또 6,000억원을 들여 수소연료전지 및 조류발전소를 건설하고 그린에너지 전용산업단지도 조성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2015년까지 새로운 일자리 5만개가 창출되고 2030년까지 그린에너지 보급률이 현재 1.25%에서 15%까지 높아질 것입니다."
- '남해안시대 프로젝트'는 잘 추진되고 있는지요.
"남해안시대 프로젝트는 수도권과 상생할 수 있는 국가균형발전전략이며 2020년 도민소득 4만달러, 동북아 7대 경제권 진입이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요트산업 ▦로봇랜드 조성산업 ▦항공클러스터 조성 등을 핵심선도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미 요트산업 육성을 위한 종합발전계획을 수립, 국제요트전시회와 '대한민국 요트대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다른 자치단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인프라 여건이 좋은 로봇랜드와 항공클러스터 조성사업도 관련 조례를 제정해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마리나시설과 무인도 특성화 등을 통한 관광ㆍ레저산업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 남해안 프로젝트와 관련해 난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남해안은 자연경관이 빼어나지만 자연공원법, 수자원보호구역 등 이중삼중의 법망에 묶여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해안 프로젝트는 방치돼 있는 자원을 활용해 주민의 소득을 높이고 경제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모티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개발과 보전을 잘 조화시키면서 환경보호라는 기본틀은 반드시 지킬 겁니다. 특별법에도 주민, 환경단체, 전문가 등 의견수렴을 거치도록 돼 있기 때문에 난개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 내년에 경남도 탄생 이래 가장 많은 외국인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월드콰이어 챔피언십'은 준비가 잘 되고 있습니까.
"21세기 화두는 '환경'과 '문화'입니다. 올해 람사르총회로 환경브랜드를 구축했다면 내년 세계합창대회인 '월드콰이어 챔피언십'을 계기로 다양한 문화콘텐츠 개발에 주력, 환경과 문화를 대한민국의 으뜸 브랜드로 키워 나갈 계획입니다. 내년 7월7일부터 11일간 세계 80여개국에서 400개 합창단, 2만여명이 참가해 열리는 이번 대회가 경남의 문화위상을 세계 속에 우뚝 세우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공연장, 숙박, 환영행사 등 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각한데, 경남 경제는 사정이 어떻습니까.
"지난 9월 말 현재 국내 무역수지는 148억원 적자이지만, 경남은 178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만큼 경남의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민생경제 활성화 5개년 계획을 차근차근 추진해 행정안전부로부터 3년 연속 지역경제 활력화 부문 최우수 평가를 받았습니다. 경제 관련 유관기관ㆍ단체와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청년 일자리 창출과 중소기업 육성자금 지원 등을 통해 지역 내 총생산(GRDP)이 서울, 경기에 이어 3위를 차지할 만큼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 미국 대선에서 김 지사와 비슷한 연배의 오바마가 당선됐습니다. 김 지사 역시 차세대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앞으로 계획을 밝혀주시죠.
"미국이 정말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마바의 대중성과 역동성이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과 맞아 떨어진 것이죠. 무엇보다 겸손하면서 포용력과 화합의 리더십의 갖춘 것이 오마바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권 도전은 아직 이야기할 단계가 아닙니다. 대권이란 누구나 꿀 수 있는 꿈이지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하고 국민들의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고 봅니다."
● 김태호 경남지사 프로필
▲1962년 경남 거창 출생▲서울대 농업교육과, 서울대 교육학 석ㆍ박사 ▲1992~1995년 이강두 국회의원 보좌관▲1995~1997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1998~2002년 경남도의회 의원▲2002~2004년 거창군수▲2004년 6월~ 현재 경남도지사
● 저서▲<농촌사회문제론> (1994) ▲ <농촌지역사회개발론> (1999) ▲ <살림살이 나누면 안됩니까?> (2004) 살림살이> 농촌지역사회개발론> 농촌사회문제론>
■ '김태호식 변화와 역발상 행정'
경남 창원시에 자리잡은 경남도 청사에 들어서면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큼직한 글귀가 가장 먼저 반긴다. 도지사 집무실에는 남해안이 대륙의 끝이 아닌 태평양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거꾸로 된 지도'가 걸려 있다. 김태호 지사의 열정과 비전을 한 눈에 보여준다.
2004년 6월 최연소로 도지사에 오른 김 지사는 '변화와 역(逆)발상'으로 도정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직원들에게 '경남도청이 망하는 법'을 찾아내라는 엉뚱한 과제를 던졌다.
위기의식에서 도정의 획기적인 발전 방향을 찾겠다는 의도였다. 그는 50여일만에 329건의 '패망보고서'를 받아 공개하면서 공무원들의 의식개혁을 재촉했다.
2006년에는 '당신에게 1,000억원이 주어지면 무슨 사업을 펼치겠느냐'는 이른바 '1,000억 정책공모'를 실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낸 시ㆍ군 직원 3명을 도청으로 특채했다. 20개 아이디어가 채택, 시행됐는데 올해 탄생한 한우 공동브랜드 '한우지예'도 그 중 하나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하라'는 그의 신념은 '이순신 프로젝트'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순신 장군을 국가브랜드화 해 세계적인 문화관광 콘텐츠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백의종군로 복원 등 27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 지사는 올 새해 벽두에 도민의 쓴소리를 자청해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공모와 추천으로 선발된 50명의 도민대표들은 김 지사와 도청 간부들을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쏟아냈으며, 도는 처리 결과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정책에 반영했다.
'남해안 시대' 선언은 젊은 도백(道伯)의 정치적 수사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3년 만에 지방정부가 주도한 최초의 법 제정 사례란 기록을 낳았다. '미래는 준비해 가는 사람의 몫'이라는 김 지사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리=이동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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