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화인의 회고. "1980년대 한창 홍콩 영화가 붐을 이룰 무렵, 양차오웨이(梁朝偉)가 방한했다. 그때는 보디가드는커녕 수행원도 없었다. 그저 김포공항에서 그를 픽업해 왔을 뿐이다. 한국에서의 일정도 미리 상의하지 않았고, 우리가 정한 대로 거의 움직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 영화산업이 발전하고, 다종다양한 영화제가 연중무휴로 열리다시피 하니 외국 유명 영화인들의 방한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 세기 한국에서 쉬 볼 수 없었던 거물급 스타들도 종종 얼굴을 비춘다. 이러다 보니 방한 취소 등 예기치 않았던 '사고'도 종종 터진다.
5일 개막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개막 선언의 희열에 앞서 낭패감을 맛봐야 했다. 올해 행사의 주요 게스트인 프랑스 배우 루이 가렐이 촬영 스케줄을 이유로 비행기 탑승 3시간 전 불참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루이 가렐은 프랑스의 유명 감독 필립 가렐의 아들. 영화 '몽상가들'(2003)의 쌍둥이 남매 중 오빠 역을 맡아 세계에 얼굴을 알렸다.
영화제 주최측은 '젊은 알랭 들롱'이 온다며 분위기를 한껏 띄웠었고, 그와의 만남을 위해 100명의 팬이 예약을 하는 열의를 보였다. 결국 주최측은 예약자 100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야 하는 수고를 감수했다.
그래도 루이 가렐의 방한 취소는 양반 축에 속한다. 지난해 서울아트시네마 관계자들은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황망한 상황과 맞닥뜨려야 했다. 미국 독립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아벨 페라라 감독이 한국행 비행기 탑승 직전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연락을 뒤늦게 받았기 때문이다.
루이 가렐은 사과의 뜻으로 자기 사인이 들어간 사진 100장을 항공 특송편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했고, 페라라 감독은 "정말 죄송하다. 다음엔 꼭 한국에 가겠다"고 유감을 표했다고 한다.
방한은 했지만 '진상'스러운 행태로 초청한 측이나 영화팬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스타보다는 그래도 인간미가 엿보인다.
몇 년 전 한 영화제에 초청됐던 외국 유명 배우는 호텔 방에 여자를 불러주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추태를 부리기도 했다고 한다. 팬들에게 세계 유명 영화인들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속을 태우고 밤을 새우는 영화인들의 노고가 가히 짐작이 간다.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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