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잊을 만하면 찾게 되는 것이 미국의 정치제도를 만든 미국정치사상의 고전 <연방주의 교서> 라는 책이다. 미국 건국 당시 쓰여진 이 책에는 대중에 대한 혐오와 우려가 가득차 있다. 연방주의>
무지하고 가진 것 없지만 숫적으로 다수인 대중이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이 세상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선출직이 아니고 가장 엘리트적인 사법부가 위헌심사권을 가져야 한다느니 하원 위에 보다 엘리트적인 상원을 만들어 양원제를 도입해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을 읽고 있으며 그 반대중적 엘리트주의에 화가 치민다.
다시 '권력의 시녀' 된 듯한 검찰
그러나 동시에 어떠한 권력도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 점에서 권력을 나누어 서로 견제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 다시 말해 탐욕은 또 다른 탐욕으로 견제하는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언제 들어도 무릎을 치게 하는 탁견이다.
최근 일련의 흐름이 나로 하여금 다시 한번 연방주의 교서의 바로 이 주장을 상기하게 한다. 우선 검찰의 움직임이다. 검찰은 최근 검찰 60주년을 맞아 자신들이 취급한 20대 주요 사건들을 발표하면서 "잘한 일을 긍지로 삼고 잘못한 일은 미래의 교훈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사가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검찰부터가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있다. 사실 검찰 60년을 평가하라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권의 시녀 60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노무현 정부 시절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노 대통령이 정권 초기 생방송된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검사들과 공개적으로 첨예한 대립을 보였고 이후 검찰의 독립성이 상당히 보장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은 다시 권력의 시녀로 돌아가 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참여정부 실세들에 대한 저인망식 사정수사이다. 검찰은 신성해운 로비의혹, 제주 제피로스 골프장 탈세, 한국석유공사 비리, 강원랜드, KT와 KTF, 부산자원 불법대출 의혹, 프라임 그룹수사, 애경그룹 수사, VK 수사 등 참여정부 실세들과 관련해 전방위 저인망식 수사를 벌였으나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또 다른 권력기관인 감사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 개인적으로 이미 두 달 전 이 지면에 썼던 '고소영 YTN, 강부자 KBS(2008년 8월 11일자)'라는 글을 통해 감사원의 정연주 KBS사장에 대한 해임요구는 감사원이 이명박 정부의 시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단적인 증거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후 나의 비판은 감사원 스스로가 자인을 하게 되었다. 감사원 실무자 협의회가 한국방송공사와 공기업 감사, 쌀 직불금 감사 등 일련의 행보는 "죽은 권력에 강하고 산 권력에 약한 감사원", "영혼이 없는 감사원"이라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나아가 협의회는 "감사원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천명하고 과감한 인적 쇄신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감사원도 독립성 확보가 과제
그러나 올바른 해법은 단순한 의지 표명이나 인적 쇄신이 아니다. 이를 넘어서 사정기관들이 대통령과 정권의 시녀가 되지 않도록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고소영 YTN, 강부자 KBS'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감사원은 미국처럼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의 통제를 받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아니 한 발짝 더 나가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정부기관이면서도 독립성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검찰에 대해서도 일부 진보적 법조계 인사들이 주장하고 있듯이 지방검찰청장의 경우 미국처럼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선출제를 도입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켜 주어야 한다. 결국 탐욕은 탐욕으로 견제할 수밖에 없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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