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은 세계자연유산의 땅이다. 지난해 한라산 천연보호구역과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계가 등재됐다. 국내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중 자연유산은 제주의 이 세 곳뿐이다.
세계가 인정한 거문오름에 올랐다. 그곳에 숨겨져 있는 공인된 '가치'를 눈으로 보기 위해서다. 거문오름의 외벽은 여느 오름과 비슷하다. 바깥 사면은 1970년대 초반 식목사업의 일환으로 심어진 삼나무숲으로 빼곡하다.
약간의 오르막을 지나 20분쯤 오르니 오름의 정상(해발 456m)이다. 주변의 봉긋 솟은 다른 오름들 풍광이 한눈에 펼쳐진다. 말발굽처럼 생긴 거문오름 굼부리(분화구) 안은 인공의 삼나무숲이 아닌 초록의 원시림이다.
이 굼부리는 한라산의 백록담보다도 크다. 굼부리 한복판에는 작은 알오름이 있고, 굼부리 외륜은 9개의 봉우리가 감싼 모양이다. 길을 안내하던 선흘리 김상수(49) 이장은 "굼부리 안의 여의주(알오름)를 놓고 9마리의 용이 희롱하는 '구룡농주(九龍弄珠)' 형상"이라고 했다.
거문오름은 제주의 368개 오름 중에서도 특별한 곳이다. 28만년 전 이곳에선 거대한 화산 폭발이 있었다. 그때 흘러내린 도도한 마그마의 강물이 바다로 향하며 만장굴 뱅뒤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을 만들어냈다.
능선을 따라 내려간 산책로는 이젠 굼부리안 원시림 속으로 안내한다. 이 원시림은 선흘곶자왈이라 불린다. 곶자왈이란 화산 분출로 생긴 용암 덩어리들이 널린 지대에 숲이 형성된 곳을 말한다. 이 곶자왈 원시림 트레킹은 마치 공룡이 살던 쥐라기 숲으로 떠나는 기분이다.
숲속은 빼곡한 초록으로 어둡다. 뭍에서 보기 힘든 식나무 붓순나무 등이 이룬 숲이다. 붓순나무는 태울 때 연기가 안 나 4ㆍ3사태 때 피신했던 민초들이 산에서 불을 피울 때 사용했다고 한다.
산책로 옆으론 보라빛의 한라돌쩌귀꽃이 이끼 위에 곱게 피어났고, 천남성은 짙붉은 열매를 맺고 있었다.
원시의 숲이지만 이곳엔 몇백년 이상의 고목이 없다. 용암의 바위들로 이뤄진 땅이라 나무가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뿌리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할 정도로 자라면 나무는 쓰러지고, 그 자리에 또 다른 나무가 생명을 이어간다. 산책로 곳곳에서 자잘한 뿌리를 드러내고 넘어진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숲속 곳곳에는 풍혈이 열려 있다. 여름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엔 따뜻한 공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다. 그곳을 지날 때 느끼는 서늘한 기운에 몸도 마음도 상쾌해진다. 김 이장은 "음이온 가득한 이 기운을 한번 받을 때마다 수명이 5년씩 늘어나니 맘껏 들이마시라"고 권했다.
5.5km되는 트레킹 코스에는 볼거리가 많다. 화전민 터와 숯가마 터, 분화 시 모습을 간직한 화산탄, 일본군이 건설한 지하갱도 등을 스친다. 패전을 코앞에 둔 전쟁 막바지, 일제는 제주도를 최후 방어선으로 삼고 7만5,000여 병력을 집결시켰다.
연합군이 일본 본토 공격의 거점으로 제주에 상륙할 것이라 판단, 제주를 지키기 위해 대비한 것이다. 이 거문오름에도 일본군 108여단의 6,000여명이 주둔했었다. 오름의 안팎에 당시 판 갱도와 진지가 곳곳에 남아 있다.
거문오름 트레킹은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탐방객 인원을 평일 100명, 주말 200명으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거문오름 트레킹 조직위원회(064)750-2514)에 신청해야 한다. 주말은 많이 밀려 있으니 한 달 전에는 신청해야 가능하다.
제주=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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