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당선의 의미는 그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라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의 출생과 성장 과정에 농축된 통합과 변화의 에너지는 미국의 지리적 경계를 넘어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동력이 될 수 있다.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하와이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흑인이라는 혈통, 와스프(WASPㆍ백인앵글로색슨신교도)가 주도하는 본토가 아닌 여러 소수인종이 섞여 있던 하와이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인도네시아에서도 유년 시절을 보낸 그의 성경배경은 한마디로 '탈 미국적'이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 무슬림 냄새를 풍기는 그 이름은 생소함 만큼이나 미국 주류 사회와의 거리감을 상징하고 있다.
232년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에 오른 그가 '미국의 세계'가 아닌 '세계의 미국'을 그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그의 몸 속에 흐르는 '다양성'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세계에 접근하는 방식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압도적인 군사, 경제력으로 세계에 군림하며 미국식 가치를 주입하려 한 부시 정부의 힘의 논리는 워싱턴의 아웃사이더이자 비주류로 살아온 그에게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는 "미국이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독재자 수하르토를 지원할 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뒷골목에서 굴종과 어둠을 보았다"고 유년시절의 기억을 토로하며 미국의 일방의 질서가 다른 쪽에는 억압과 핍박일 수 있음을 비판했다. '우리가 믿는 변화' '우리가 필요한 변화'라는 그의 선거 모토는 다른 나라의 희생 위에 건설되는 미국의 이익이 아닌 미국의 이익이 세계의 이익이 될 수 있는 미국의 변화를 담은 것이었다.
오바마는 미국과 세계에 대한 접근법으로 대화를 내세웠다. 미국의 우방뿐 아니라 심지어 적국이라도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부시 정부가 '악의 축'이라고 낙인 찍은 이란, 북한과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강조했고, 부시 정부가'신냉전의 망령'이라고 비난하는 러시아에 대해서는 "적도 친구도 아니다"고 했다. 배제와 대립이 아닌 모색과 타협이 그가 추구하는 해법의 정신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오바마가 그리는 미래가 실현되기에는 숱한 난제가 가로놓여 있다. 부시 정부가 남긴 불신의 상처가 워낙 크다는 점도 있지만, 세계가 오바마의 이상론을 받아들일 만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스탈린의 영광 재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통해 패권국가로의 복귀를 노리고 있다. 신흥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경제질서의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인권과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추구하는 무차별적인 에너지 확보 외교는 오바마가 추구하는 상생의 민주주의와 충돌할 여지가 많다. 남미 대륙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좌파 물결은 8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로 통칭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낳은 경제파탄이 원인이라는 점에서 해결이 쉽지 않다.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탄생이 미국 사회에 갖는 의미 역시 심대하다. 인종 계층 나이를 불문하고 미국민이 그에게 보낸 전폭적인 지지는 그가 주창하는 '통합의 미국'이 꿈이 아님을 보여준다. 정치 소외 계층이던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이 이번 선거를 통해 변화의 주역으로 등장했고, 백인은 흑인 오바마를 선택함으로써 화해와 통합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여론조사 결과 예상되는 역대 최고의 투표율, 전통적으로 정치 무관심층이었던 30세 이하 젊은 유권자들의 폭발적인 선거 참여는 선거혁명의 차원을 넘어 미국 정치 사회의 일대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워싱턴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지지 주)를 넘지 않고는 갈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철옹성처럼 구축됐던 양당 지지세력의 분할 구도 역시 오바마의 등장으로 깨졌다.
공화당의 아성이라 할 수 있는 남부 주의 표심이 요동친 것은 인종 갈등이 아닌 인종통합을 부르짖은 에이브러햄 링컨 시대 초기 공화당 정신으로의 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흑인이라는 한계를 통합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킨 오바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바마는 3월 당 경선 연설에서 "나는 단 한번의 선거와 단 한번의 후보, 특히 나처럼 완벽하지 않은 후보 한명으로 우리가 인종차별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고 말했다. 인종차별, 분열의 종식은 쉽지 않겠지만 오바마의 당선으로 혁명의 첫단추가 꿰어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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