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 평양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에도 불구하고 평양시민과 대남 사업 담당자들에게선 여유가 엿보였다. 하지만 북측은 “북남 관계가 일촉즉발의 기로에 섰다”는 말을 반복하며 상황이 녹록치 않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토요일인 1일 평양역 광장은 어딘가 떠나려는 인파로 가득했다. 거리 곳곳의 군고구마 매대에도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거리에서 직접적 반미 구호는 대부분 자취를 감췄고,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을 기념하는 이동식 간판과 ‘자력갱생’ ‘비약의 준마’ 같은 경제 건설 독려 구호가 주류를 이뤘다.
건설 경기도 괜찮아 보였다. 평양 시내 흉물이었던 105층짜리 류경호텔 공사가 재개된 것을 비롯해 시내 곳곳에서 고층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새로 포장하는 도로도 눈에 띄었다. 대동강에선 모래 채취 작업도 활발했다.
한 북한 경제 전문가는 “새벽까지 불이 켜져 있는 아파트도 여럿이고 노란색 평양 번호판을 단 자가용도 눈에 띄게 증가하는 등 경제 상황이 약간 개선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물론 시내 중심가를 제외한 가로등은 전력난 여파로 꺼져 있었고, 평양 전체의 풍광도 여전히 어두웠다.
시 외곽 들판에선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 있었다. 북측 관계자는 “올해는 태풍도 없고 날씨도 좋아 농사가 잘 됐고 한 3년 만 이런 풍년이 이어지면 좋겠다”면서도 “비료도 부족하고 해서 당장 식량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꼬여 있는 남북 관계 개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북측 인사들은 지난달 29, 30일 잇따라 발표된 북한 군부 명의의 남북 관계 전면 차단 가능성 경고가 빈말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들은 한미 국방장관회담 과정에서 나온 선제타격론, 인공기 표적에 포탄을 쏜 건군 60주년 화력시범 행사, 10ㆍ4선언 이행 문제 등을 주로 거론했다.
일부 관계자는 “앞으로 4년 동안 이명박 정부와 대화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하나도 아쉬울 게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한 남측 인사는 “북측 관계자가 군부의 실천행동에는 개성공단 폐쇄와 서해 쪽에서의 군사 행동이 포함된다고 설명하더라”고 전했다.
최근 북한 군부에서 계속 문제를 삼고 있는 대북 전단(삐라) 살포 문제도 단골 메뉴였다. 북측 인사는 “평양까지는 삐라가 날아오지는 않지만 개성 등 전연지대(휴전선) 일대에는 한두 장 날아오는 것 같다”며 “몇 장이 날아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을 왜 건드리느냐. 정부가 방조하거나 지원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문제 관련 질문에 즉답을 회피했지만 그렇다고 예민하게 반응하지도 않았다.
한 관계자는 “남쪽에서 자꾸 우리의 장군님이 어떻다고 떠드는 걸 아는데 다 헛소리”라며 “우리 체제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북남이 모두 잘 먹고, 잘 살아보자고 하는 건데 왜 이렇게 못살게 구느냐”며 “도발은 북남 모두의 공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평양=정상원 기자 ornot@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