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말기 의문 속에 사망한 광서제(光緖帝)가 독약에 의해 암살당한 사실이 100년 만에 밝혀졌다. 중국 전문가팀이 2003년부터 광서제의 사인을 둘러싼 조사를 벌인 끝에 그가 치명적인 독약인 비소 성분의 비상(砒霜)을 먹고 살해된 것을 확인했다.
유력 일간지 광명일보(光明日報) 온라인판을 비롯한 현지 언론매체는 3일 전문가팀이 광서제가 남긴 머리카락을 X선 촬영 등 최첨단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분석한 결과 대량의 비상이 검출됐다고 전했다. 사인 규명에는 중국원자력연구원과 베이징시 공안국 법의학감정센터, 청서릉(西陵) 문물관리처가 직접 참여했다.
광서제의 유골과 의복도 비상에 오염된 것으로 나타나 체내에 흡수된 독극물 총량은 치사량을 훨씬 초과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 산하의 국가청사(淸史) 공정편찬위는 2일 베이징에서 광서제가 공식문서에 기재된 것처럼 병사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비상을 먹은 뒤 중독사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결론은 정사로서 현재 편찬작업이 집행 중인 '청사(淸史)'에 정식으로 실릴 예정이다.
1875년 네살의 어린 나이에 11대 황제로 즉위한 광서제는 이모인 서태후가 수렴청정으로 장기간 실권을 행사하면서 사실상 '꼭두각시' 역할을 맡는데 그쳤다. 그는 청일전쟁의 패전을 겪는 등 청조 말기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재위 34년째인 1908년 11월14일 저녁 37세의 젊은 나이에 돌연 숨을 거뒀다.
공교롭게 서태후도 광서제가 죽은 다음날 74세를 일기로 사망해 그의 사인에 대해서도 독살설 등 여러 소문과 억측이 난무했으나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현존하는 문헌을 보면 광서제는 친정에 나서기 위해 1898년 캉유웨이(康有爲) 등과 함께 변법유신을 일으켰다가 실패, 궁중과 영대(瀛台)에 10년간 유폐돼 있으면서 한약을 장기간 복용했다. 광서제가 복용한 한약에는 웅황과 자황, 주사 등 비소와 수은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만성중독을 유발했으나 직접적인 사인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청사공정편찬위는 광서제를 독살한 주범에 관해선 앞으로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고 언급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광서제를 죽여야 할 이유를 가진 서태후와 위안스카이(袁世凱), 서태후 측근인 환관 리롄잉(李蓮英) 가운데 한 명일 것이란 설이 유력하다.
서태후는 자신이 죽은 뒤 광서제가 친정에 나서 개혁정치를 구현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위안스카이는 변법유신 과정에서 광서제를 배반하고 수구파로 돌아서 보복을 걱정하고 있었다. 리롄잉도 서태후를 믿고 광서제를 핍박했기 때문에 광서제의 친정을 두려워했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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