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어느 레스토랑에서는 손님이 앉은 홀을 향해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헌데, 그 카메라의 역할이 CCTV와는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 레스토랑은 적어도 7,8가지의 음식이 나오는 코스 메뉴로 인기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아마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타이밍을 조절하느라 카메라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접시에 담긴 음식의 맛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타이밍 조절이다.
■ 타이밍
각종 향신료와 토마토, 샐러리를 주인공으로 끓여 만든 수프를 차갑게 식혀서 입맛을 돋우는 첫 번째 전채로 먹는다. 다음, 투명하도록 얇게 썬 무를 식초와 설탕에 절이고, 통통한 게살을 두 장의 무로 포개어 시원하고 아삭하게 먹는다.
다음은 미지근한 달걀찜. 가을 버섯이 달걀 속에 숨어 있다. 찜통에서 막 꺼낸 듯, 뜨겁지 않은 따뜻한 맛이 온기를 준다. 다음은 뜨거운 야채 볶음을 얹은 생선 요리.
음식 각각의 맛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코스로 요리를 먹을 때에는 연결성이 중요하다. 차가운 음식부터 뜨거운 음식으로, 맛이 연한 음식부터 간이 진한 음식으로, 채소 요리에서 육류 요리로. 식사의 흐름을 쉽게 해주는 공식이 있다.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어도 이런 흐름은 가정에서도 쉽게 응용할 수 있다. 가령 집들이를 할 때, 차가운 샐러드나 기타 냉채를 무쳐 내면서 손님들의 입맛을 돋우고, 아주 뜨겁지 않게 먹는 온기 있는 음식을 낸다.
잡채나 모둠전 같은. 그러고 나서 뜨거운 구이나 마파두부 등이 입 안을 화끈하게 달궈 주면 식사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어쨌든 식사 테이블을 향해 카메라를 설치해 가면서까지 음식의 서빙을 딱딱 맞추기는 어려워도, 조금만 신경 쓰면 같은 음식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
■ 그릇의 재질
같은 음식을 더 맛있게 먹는 비결 중 또 하나가 바로 그릇. 100점짜리 음식도 일회용 종이 접시에 담으면 그 맛을 살리기 어렵다. 국물은 종이로 스며들고, 온기는 금방 사라져버린다. 같은 이유로 플라스틱 접시도 요리 맛을 살리는 데에는 적합치 않다. 하지만 반드시 값비싼 식기만이 좋다는 것은 또 아니다.
가령 라면은 빨리 끓는 양은 냄비에 끓여 냄비째 먹는 것이 맛있다.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찌개는 고급 사기나 도기보다 뚝배기에 담아야 제맛이다. 찬 음식은 차게, 뜨거운 음식은 뜨겁게 먹는 것을 중요시하는 우리네 입맛 때문인지, 한국 음식을 담는 한국산(産) 식기는 유독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진다.
산채 비빔밥이나 냉면을 담는 양은 대접, 좀 따뜻하게 먹어야 맛있는 전주비빔밥을 담는 방짜 유기 대접, 돌솥비빔밥을 위한 돌 그릇. 도예가들이 온 정성으로 구워내는 도자기 그릇에는 어떤 반찬을 담아도 정갈해서 인기가 좋다.
우리는 도자기 접시를 흔하게 생각하지만, 그 가치는 외국에 나가면 더 빛을 발한다. 파스타 한 접시를 도자기 접시에 담는 순간 고급스러워지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톰하게 구워 낸 도자기 접시는 음식 온도를 유지하는 기능까지 있으니 먹는 내내 그 온기가 남아 있어 더 맛이 있다.
굳이 음식의 온도에 민감할 일이 아니라면, 역사가 오래 된 식기를 매치해 볼 수도 있다. 1800년대부터 덴마크의 여왕이 썼다는 접시 등은 한 장, 두 장 장만해 가며 아껴 쓰다가, 훗날 딸내미에게 물려주어도 좋을 만큼 접시 자체가 아름답다.
떡 한 조각이나 쿠키, 양갱이나 케이크를 썰어 두면 우리 집이 금방 고급 찻집으로 변한다. 역사가 오랜 그릇들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다.
■ 온도ㆍ조도ㆍ소음ㆍ사람
사람들은 실온이 너무 높으면 식욕이 감소한다고 한다. 하지만 추울 때 먹는 음식은 체하기 십상이다. 밥집이나 레스토랑을 갔을 때, 들어서는 순간 체감되는 온도는 딱 적당한 정도여야 하는데, 그것을 맞춰 유지하려면 다시 정성이 들어간다.
기분이 좋을 정도의 온도가 유지되는 공간에서는 식사가 즐겁다. 그것이 직원식당 오늘의 메뉴든, 뼈다귀탕이든, 세 시간짜리 프랑스 정찬이든. 가정에서는 환기를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밖에 음식을 먹을 때 실내의 밝기, 즉 조도가 식사에 영향을 끼치고, 귀에 들리는 모든 소음이 소화에 영향을 미친다. 함께 먹는 사람이 누구냐, 혼자 먹을 때라도 식당 직원과 의사 소통이 잘 되느냐의 문제도 있다.
막역한 친구들과 먹는 음식은 뻣뻣한 상관과의 식사보다 맛있게 느껴진다. 제 아무리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마음이 불편하면 그 맛을 덜 느낀다. 상견례 자리에서의 와인보다는 라면 국물에 혼자 마시는 소주가 더 달다.
40주 가까이 '명품 먹거리'를 찾아 헤매는 칼럼을 연재하다 보니 문득, '맛' 너머의 것들이 궁금해졌다. 어느 세월에 온도, 귀에 들리는 소음까지 까탈을 부리느냐 하겠지만, 이런 요소 하나하나가 쌓여 내 기분과 컨디션을 좌우하고 소화를 좌우하고 장기적으로는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맛'만큼 중요한 '명품 먹거리'의 조건은 음식 자체의 맛을 최상으로 유지하려는 정성과, 그것을 먹는 이의 마음이 얼마나 편안한 상태냐에 달렸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박재은ㆍ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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