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 연구의 태두인 버얼과 민즈(Adof A. Berle and Gardiner C. Means)는 일찍이 미국 기업들의 소유구조를 살펴보다가 의외의 현상에 깜짝 놀랐다. 많은 기업에서 소유지분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 이미 1900년대 초에 관찰되었다.
소유-경영 분리된 선진형 모델
오늘날 용어로는 이것을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고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보편화되어 있는 현상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80% 이상의 대기업에서, 서구에서는 60~70%의 대기업에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고 있다. 이것은 기업의 당연한 진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선진자본주의의 새 전통으로 정착되고 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선진국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현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거의 모든 대기업들이 총수라고 하는 최대주주가 직접 경영권을 행사하는 오너경영체제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도 소유-경영 분리의 싹이 보이기 시작했다. POSCO와 KT가 그것이다.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선진형 지배구조의 싹이 튼 것이다.
구미국가에서처럼 사기업의 진화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POSCO와 KT는 민간기업이고, 소유가 분산되어 있고, 전문경영인이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모델이고 새로운 시험이다.
그런데 POSCO와 KT의 이런 싹이 제대로 커 갈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그들 스스로의 자세와 정치권력과의 관계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위치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동시에 상응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지배구조가 선진형의 지배구조이고 다른 지배구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정부도 이런 지배구조를 존중해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정부가 과거의 향수에 젖어 이들의 대표선임이나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대재앙이 될 수 있다. 5년마다 치러지는 대선캠프의 논공행상에 민영화된 과거의 공기업까지 휘말려 든다면 한국에는 영원히 선진형의 기업지배구조가 발붙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POSCO와 KT는 이제 재벌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민간 기업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 재벌과 다를 뿐이다. 대주주가 있든 없든 민간기업의 경영이 정부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철칙이다. 기업 스스로도 이런 상황에 대한 소명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스스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의지가 분명해야 하고 아름다운 경영 전통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일본의 대기업은 90% 이상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다. 소유-경영 분리가 가장 잘 정착된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전문경영인의 천국이다. 전문경영인의 능력과 기업가정신이 일본을 선진국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정치권력에 아부하지도 않았고, 경영권을 세습시키려고 하지도 않았다. 우리나라도 전문경영인 지배기업이 활성화되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모든 선진국에서 전문경영인 지배기업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가.
자신들도 정부도 잘 키워가야
POSCO와 KT는 어렵사리 만들어 낸 전문경영인 지배기업이다. 우리도 새로운 기업지배구조의 싹을 잘 키워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 스스로가 자기들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정부도 민영화 정신을 존중하는 인내를 가져야 한다.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총수에 의한 황제경영으로 비판 받는 재벌식 지배구조보다 더 나쁘다. 그래서 공기업을 민영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POSCO와 KT가 잘 커나가야 우리나라에도 전문경영인 기업이 계속 나타날 수 있다. 재벌의 지배구조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지배구조를 보여주지 못하면 우리나라에는 선진형 기업지배구조가 영원히 터 내리지 못할 것이다. POSCO와 KT의 미래는 바로 한국 대기업의 미래이다. 그리고 한국 경제의 미래이고 시장경제의 미래이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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