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이 지경이면 누군가 한 사람쯤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줄 알았다. 그 것이 대통령이든, 주무 장관이든, 금융기관장이든 간에 "얼마나 고통이 크십니까. 제가 잘못한 탓입니다"하고 국민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져 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를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제가 갑자기 나빠진 탓"이라는 변명만 늘어놓기에 급급했다. 따지고 보면 그 말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도자나 고위층의 자세는 그런 게 아니다.
왕조시대 임금들이 흉년이 들거나 한발이 닥칠 때 수랏상의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몸소 근신한 것은 단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일종의 통치술이었다.
지난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권이 교체되면 내년에 (주가지수) 3000을 돌파하고 임기 안에 5000까지도 갈 수 있다"고 대통령이 말한 것을 잊지 않는 국민들이 많다. 얼마 전에는 "펀드라도 가입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대통령의 말을 듣고 주식을 산 사람들은 한달여 만에 20% 이상을 허공에 날려보내야 했다.
그런데도 위기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정부의 대처가 미흡했던 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잘못했다"는 한 마디가 그렇게도 어려운가.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는데 무슨 대책인들 먹혀 들것인가.
부시 대통령은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통과시키기 위해 보름동안 14번의 특별 기자회견을 했고, 재무부 장관은 하원 의장에게 무릎까지 꿇었다.
국민들은 대통령과 이 정권이 서민들과 함께 고통을 나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참모들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왜 20%대에서 답보하는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괘씸하기는 은행과 증권사, 건설업체가 더하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영업방식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며 임원들끼리 돈 잔치를 해온 은행들은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면서도 "은행들이 뭘 잘못했느냐"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최근 수년간 집값 급등기에 이익을 노리고 앞다퉈 아파트를 짓고 분양가를 높여 떼돈을 벌었다가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된 건설사들은 한술 더 떠 정부의 지원책이 미흡하다며 떼를 쓰고 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사회지도층의 행태에 너무도 익숙해 진 탓에 쌀 직불금 사태 당시 비슷한 광경이 연출될 때도 국민들은 놀라지 않았다. 공무원들의 직불금 부당수령 사실을 확인하고도 은폐한 것이 노무현 정권이고, 실제 비리에 연루된 인사 대부분이 현 정권측 사람들이라면 책임을 함께 지는 게 당연한데도 서로 "네 탓이오"를 연발했다.
멜라민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을 때도 그랬다. 과자 회사는 중국에 손가락질하고, 정부는 제과업체를 탓하고, 식자들은 정부와 회사를 싸잡아 나무랐다. 소비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메아리 없는 한탄만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천주교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신도는 고백의 기도 중 가슴을 세 번 치며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하면서 허물을 반성하고 성찰한다. 지금 공직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책임 의식이다. 그래야 공직자도 살고 나라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언론도 작금의 경제 위기 도래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펀드 광풍을 부추겨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친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는 반성문을 쓰는데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충재 부국장 겸 사회부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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